이라크 종교지도자 "외세 개입, 내전 가능성" 경고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민생고 해결과 부패 청산,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면서 한 달째 이어진 이라크 반정부 시위가 장기화할 조짐이다.
지난달 1일부터 반정부 시위대가 수도 바그다드를 비롯해 남부 주요 도시를 휩쓰는 가운데 정부가 약속한 개혁 조처는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군경의 실탄 발포로 시민 250여명이 사망하고 수천명이 다쳤다.
군경의 강경 진압에도 참여 범위와 시위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2일 밤 바그다드에서 시위에 참여한 대학생들이 주요 도로를 차량으로 막고 군경과 대치했으며 교내 시위도 활발히 진행됐다. 국공립 학교의 교사도 파업을 결의하고 반정부 시위에 가담했다.
3일에도 바그다드, 카르발라, 힐라, 나시리야, 디와니야, 바스라 등 주요 도시에서 시위가 벌어졌고 군경과 물리적으로 충돌했다.
초기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자발적으로 조직된 시위가 한 달을 넘기면서 정치적인 색채도 서서히 드러나는 모양새다.
이라크의 시위 상황을 전하는 SNS에는 2일 밤 바그다드 타흐리르 광장에서 벌어진 시위에서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를 태우면서 반미 구호를 외치는 시민들의 동영상이 여러 건 게시됐다.
이란 언론들은 이 장면을 부각해 보도했다.
반면 미국 매체는 시위대가 이란의 이라크 내정 간섭에 분노했다면서 현장에서 반이란 구호를 쉽게 들을 수 있다고 전했다.
특히 이란의 영향력이 큰 이라크 남부에서 시위가 활발한 것은 이란의 개입에 염증을 느낀 이라크 국민의 반발심을 방증한다고 해설했다.
SNS에서도 이란을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의 동영상이 게시됐다.
이라크 현 정부가 이란과 종파적으로 같은 시아파 출신이 주도하는 데다 내각 구성에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의 정파가 큰 비중을 차지한 만큼 이란은 정부의 무능과 부패를 규탄하는 반정부 시위에 수세적인 입장이다.
이란은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반정부 시위의 배후를 미국,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으로 지목하고 안정과 자제를 주문했다.
이라크는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등거리를 유지하면서 국익을 도모하는 실리적이고 자주적인 대외 정책을 추구하려 한다. 그만큼 이들 외세의 영향에 취약하다는 뜻이다.
반이란, 반미 구호가 뒤섞인 이번 시위에서도 이라크의 이런 처지가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알자지라 방송은 2일 "이라크 국민 대다수는 정치 지도자들이 서민의 민생고는 외면하고 이라크의 주요 우방 두 곳, 즉 미국과 이란 중 한쪽에 복속됐다고 여긴다"라고 분석했다.
이라크 최고 종교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알시스타니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몰락한 뒤 가장 큰 규모인 시민의 집단행동에 대해 외세 개입을 우려하면서 내전으로 번질 수 있다고 1일 경고했다.
후세인 정권 축출 뒤 구 기득권인 수니파와 시아파가 내전에 버금가는 충돌을 빚었다면 이번 시위로 이라크가 자칫 반이란과 반미 진영으로 나뉘어 외세에 휘둘릴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이라크 시위의 성격을 '반정부'라고 표면적으로만 단순화할 수 없고, 그 안에서는 매우 복잡한 정치적 다원 방정식이 작동한다는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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