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이라크에서 한달 넘게 이어지는 반정부 시위와 유혈사태를 두고 이라크에 가장 영향력이 큰 미국과 이란의 시각이 대조된다.
미국은 친이란 성향의 이라크 정부와 의회를 흔드는 데 이번 시위를 발판으로 삼으려는 반면 이란은 현 정부를 유지하면서 국민의 개혁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미 백악관은 11일(현지시간) 주이라크 미 대사관을 통해 낸 성명을 통해 이라크 정부에 시위대에 대한 폭력을 멈추고 선거제를 개혁해 조기 총선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번 반정부 시위의 정치적 성격이 혼재하지만 미국은 이란의 개입에 염증이 난 이라크 국민의 누적된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한 것으로 해석한 셈이다.
이라크 현 정부가 지난해 5월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확보한 반외세 성향의 정파와 친이란 정파가 주도한 만큼 미국은 총선을 다시 치러 이라크의 정계가 개편되기 바라는 것이다.
아델 압둘-마흐디 이라크 총리는 지난달 시리아 주둔 미군이 이라크로 철수하자 이를 허가하지 않았다면서 최대한 신속히 이라크 영토에서 떠나야 한다고 미국에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미국과 관계에 대해 그가 처한 정치적 입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은 이라크에서 반이란 정서가 시위를 계기로 최고조에 달했다고 보고 총선까지 이 흐름이 이어진다면 이란과 거리가 먼 이라크 내각이 구성될 것으로 기대한다.
미국 언론의 보도 역시 대체로 시위대의 반이란 구호에 초점을 맞췄고,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하는 방식으로 이란의 개입을 부각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미국 AP통신은 이란 군부의 실세 거셈 솔레이마니 장군이 이라크에서 반정부 시위가 시작한 이튿날인 지난달 2일 바그다드를 비밀리에 찾아 이라크 총리 대신 시위 진압을 사실상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친미 진영인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일간 아랍뉴스도 익명의 이라크 소식통을 인용해 솔레이마니 장군이 최근 바그다드에 11일간 머물면서 위기에 처한 압둘-마흐디 총리를 물심으로 지원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압둘-마흐디 총리는 총리로 임명됐을 때부터 결정권이 없었다"라며 "솔레이마니 장군의 최측근인 아부 지하드라는 인물이 모두 결정했다"라고 주장했다.
이란은 이라크의 반정부 시위에 대해 폭력 사태는 멈춰야 하고 법적인 절차에 따라 안정을 되찾아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이다.
그러면서 이번 시위의 배후가 이라크의 불안을 조장하려는 미국,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이라고 지목했다.
이란 언론들은 이라크의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대다수 시민이 정치적인 성향보다는 만성적인 민생고에 항의한다는 방향으로 시위를 규정하고 있다.
이달 3일 이라크 카르발라 주재 이란 총영사관이 시위대에 공격받았을 때 이란 정부는 "외교 공관에 대한 폭동 행위를 우려한다"라는 수준으로 짤막하게 논평했을 뿐이다.
이란 외무부는 이 시위에 대해 지난달 27일 낸 성명에서 "이라크 정부와 종교 기관이 문제를 극복하고 단결로 번영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란은 이라크 현 정부가 구성됐을 때부터 언제나 지지를 보냈다"라면서 거리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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