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중남미 국가들, 모랄레스 탄 항공기 기착·영공 통과 불허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망명길에 오른 에보 모랄레스 전 볼리비아 대통령을 태운 멕시코 공군기는 볼리비아에서 출발한 지 16시간 만인 12일(현지시간) 오전 11시 멕시코시티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중간 급유에 필요한 시간을 고려해도 예상보다 두 배는 더 걸린 여정이었다.
멕시코와 볼리비아 사이에 있는 일부 국가들이 영공 통과와 급유를 위한 기착을 허용하지 않은 탓에 한참을 기다리거나 돌아간 탓이다.
이날 오전 마르셀로 에브라르드 멕시코 외교장관이 기자회견에서 설명한 여정에 따르면 멕시코가 모랄레스 전 대통령을 태우기 위해 공군기를 보낸 것은 모랄레스 망명 허가 사실을 발표한 직후인 11일 오후였다.
공군기는 페루 정부의 허락을 받아 리마에 들러 연료를 넣고 볼리비아 영공 통과 허가를 기다렸다.
11일 저녁 볼리비아 정부의 영공 진입 허가를 받고 비행기가 이륙했으나 볼리비아에 거의 진입했을 때 다시 회항해야 했다. 볼리비아가 허가를 번복했기 때문이다.
에브라르드 장관은 "(볼리비아 정부에서) 누가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모랄레스와 부통령, 상·하원 의장이 줄줄이 사퇴한 볼리비아는 사실상 권력 공백 상태였다.
공군기가 리마에 돌아와 몇 시간을 더 대기한 후에야 볼리비아 정부는 허가를 내렸고, 다시 출발한 비행기는 볼리비아 코차밤바주의 치모레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던 모랄레스 전 대통령을 태웠다.
멕시코로 돌아갈 때도 마찬가지로 리마에 들러 기름을 넣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페루의 중도우파 정부는 모랄레스가 탄 공군기의 기착을 허가하지 않았다.
에브라르드 장관은 페루가 "정치적인 고려"에 따라 기착을 불허한 것이라며 군과 모랄레스 지지자들이 둘러싸고 있는 치모레 공항에서 대기한 순간이 "가장 힘들고 긴장된 순간이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멕시코는 플랜B를 가동하기로 했다.
페루 대신 볼리비아 남쪽 파라과이에 들러 급유하기로 한 것이다. 이를 위해 멕시코 정부는 파라과이 정부에 허가를 요청했고, 멕시코의 요청을 받은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당선인도 직접 파라과이 대통령에게 전화해 부탁했다.
파라과이 정부가 흔쾌히 허락하면서 수도 아순시온에서 급유를 마쳤으나 이번엔 볼리비아와 에콰도르 정부가 영공 통과를 불허했다.
항공기는 직항로인 볼리비아 대신 영공 진입을 허락한 브라질과 페루로 빙 돌아갔고, 에콰도르 대신 태평양 상공으로 우회해 멕시코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에콰도르는 뒤늦게 영공 통과를 허가했다고 멕시코 정부는 덧붙였다.
이 같은 험난한 여정은 중남미의 복잡한 정치 지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다.
에브라르드 장관도 "마치 중남미 정치 여행 같았다"라고 여정을 표현했다.
모랄레스 전 대통령이 탄 비행기가 정치적인 이유로 복잡한 비행을 한 적은 이전에도 있었다.
2013년 그가 러시아 모스크바 방문 후 돌아갈 때 그의 비행기에 미국 전직 정보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타고 있다는 루머가 돌면서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이 영공 통과를 거부했다.
이들 국가는 이후 볼리비아에 공식적으로 사과했고 모랄레스도 사과를 받아들였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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