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대 오른 레바논 정치…시민들 "종파 뛰어넘는 통합 필요"

입력 2019-11-16 07:23  

시험대 오른 레바논 정치…시민들 "종파 뛰어넘는 통합 필요"
종파별 권력안배원칙, 국가정책에서 비효율성 지적

(베이루트=연합뉴스) 노재현 특파원 = 지중해 중동국가 레바논의 정치가 한달 동안 이어진 반정부 시위를 계기로 갈림길에 섰다.
시위는 지난달 17일 왓츠앱 등 메신저 프로그램에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정부 계획에 대한 반발로 시작됐다.
지난달 29일 사드 하리리 전 총리가 시위에 대한 책임으로 사퇴를 발표했지만, 레바논 국민은 기득권 정치인들의 전면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레바논 주요 정파들은 최근 모하메드 사파디 전 재무장관을 새 총리로 지명하는데 합의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성난 민심을 진정시킬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중동에서 상대적으로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국가로 꼽히는 레바논이 정치적 도전에 직면한 셈이다.
레바논의 정치 체제는 명목상 대통령제(임기 6년의 단임제)이지만 사실상 총리가 실권을 쥐는 내각제에 가깝다.
특히 종파 간 세력 균형을 위해 대통령은 마론파 기독교, 총리는 이슬람 수니파, 국회의장은 이슬람 시아파 출신이 각각 맡는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독특한 권력안배원칙은 18개 종파가 복잡하게 얽힌 상황을 고려한 제도로 그 뿌리가 깊다.
1943년 레바논이 프랑스로부터 독립할 때 제정된 국민협정에도 종파별 권력안배원칙이 있었다.
이후 1975년부터 기독교와 이슬람 세력의 내전을 겪은 뒤 1989년 사우디아라비아가 중재한 타이프협정으로 권력안배원칙이 다시 정립됐다.
헌법 개정으로 총리의 권한이 강화됐고 의회 구성을 기독교와 이슬람교에 동등하게 배분되도록 한 것이다.

레바논의 권력안배원칙은 여러 종파의 이해를 보장하고 공존에 긍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국가 정책에서는 비효율성을 초래한다는 지적도 있다.
예컨대 2014년 5월 미셸 술레이만 대통령이 임기 만료로 물러난 뒤 정파 간 갈등으로 후임자를 뽑지 못하다가 현 미셸 아운 대통령이 29개월 만에 선출됐다.
이듬해인 2015년에는 베이루트 시내에서 쓰레기를 처리하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력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또 작년 5월 의회 총선거가 무려 9년 만에 실시돼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 동맹이 승리했지만, 내각은 거의 9개월 만인 올해 1월 말에야 꾸려졌다.
그 사이에 레바논에서는 정부 구성의 지연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이번 반정부 시위에서는 종파별 권력안배원칙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시위대는 종파들의 '권력 나눠먹기'가 아니라 전문적 기술관료들로 구성된 내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15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만난 시민들도 종파별 '칸막이'를 뛰어넘어 국가 전체를 위한 통합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 30대 레바논 남성은 "정치와 종교는 서로 개입하기보다 분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지금 종교 정당들은 문제가 많다"고 비판했다.
그는 "시민이 원하는 지도자를 직접 뽑을 수 있어야 하고 교육, 환경 등 여러 분야에서 전문가들이 장관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이루트아메리칸대학(AUB) 학생 라나(19)는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려면 종파 우선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며 "지금까지 지속한 종파들이 1∼2개월 만에 없어질 것 같지 않다"고 현실적 한계도 함께 짚었다.
noja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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