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핵심용의자 '플리바게닝' 불허에 야당 등 '진실 외면'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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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탐사보도 기자 피살 사건을 둘러싸고 지중해 작은 섬나라 몰타의 정국 혼란이 심화하고 있다.
몰타 정부가 사건의 핵심 용의자로 지목된 유력 기업가에 대해 수사 협조에 따른 형사적 면책을 허용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진실을 가리려한다는 비판론에 직면했다.
로이터·dpa 통신 등에 따르면 조지프 무스카트 몰타 총리는 긴급 내각 회의를 마친 직후인 29일(현지시간) 새벽 TV로 생중계된 기자회견을 열어 관련 결정 내용을 설명했다.
2년 전 피살된 다프네 카루아나 갈리치아 기자 사건을 수사해온 몰타 경찰은 이 일에 깊이 가담했다는 의심을 받는 기업가 요르겐 페네치를 지난 20일 새벽 체포해 조사해왔다.
페네치는 자신의 고급 요트를 타고 몰타 영해를 벗어나려다 해상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에너지·관광 사업 등을 이끌며 몰타 최대 부호가 된 그는 체포 뒤 정부에 자신의 범행 책임을 묻지 않는 조건으로 알고 있는 사실을 모두 말하겠다고 제안했다. 일종의 '플리바게닝'을 요청한 것이다.
이에 무스카트 총리는 페네치의 제안을 포함한 사태 수습 방안을 논의하고자 28일 오후 8시 긴급 내각 회의를 소집했다. 회의는 29일 새벽 3시까지 장장 7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무스카트 총리는 회견에서 검찰과 경찰이 페네치의 제안을 받아들일 어떤 이유도 없다고 조언했다며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관련 의혹을 철저하게 조사할 것이며 이를 자신이 직접 챙기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야당과 일부 언론에선 무스카트 총리가 자신의 최측근을 비롯해 내각 주요 인사들이 사퇴하는 등 정권의 존립 기반이 흔들리자 진실 규명을 외면하려한다는 지적을 제기한다.
갈리치아(사망 당시 53세)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정치권이 연루된 각종 부정부패 의혹을 폭로해오다 2017년 10월 자신의 차량에 설치된 폭발물이 터져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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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사건 발생 수일 뒤 범행을 실행한 남성 3명을 체포해 기소했으나 그 배후가 누구인지는 2년 가까이 베일에 싸인 채 수사에 진척이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범행 모의의 중간책으로 의심되는 남성이 이달 중순 붙잡힌 데 이어 일주일 뒤 페네치까지 체포되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특히 페네치는 사건 전모를 잘 아는 핵심 용의자로 꼽혀 그의 입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가 범행 실행 명목으로 15만유로(약 2억원)를 관련자에게 건넸다는 현지 언론 보도도 있다.
페네치 체포의 후폭풍은 거셌다.
페네치는 경찰 조사에서 갈리치아 살해를 계획하고 지휘한 인물로 무스카트 총리의 최측근이자 절친인 케이스 스켐브리 총리 비서실장을 지목했고, 스켐브리는 지난 26일 전격 체포됐다.
아울러 스켐브리와 함께 의혹에 연루된 콘라드 미치 관광부 장관이 사퇴를 선언한데 이어 크리스티안 카르도나 경제부 장관도 업무를 잠정 중단해 내각 공백 사태가 현실화했다.
갈리치아는 죽기 8개월 전 페네치가 두바이에 설립한 '17 블랙'이라는 정체불명의 회사를 통해 정계 고위 인사들에게 뒷돈을 건넸다는 의혹을 폭로한 바 있다. 이 회사가 스켐브리와 미치가 세운 개인 회사에 자금을 댔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이들은 범행 연루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으나 현지에선 두 사람을 겨냥한 의심 어린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몰타 시민들 사이에선 페네치의 진실 고백 의지를 꺾을 수도 있는 무스카트 총리의 이번 결정으로 한창 속도를 내던 경찰 수사에 급제동이 걸리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건의 진상 규명 운동을 이끄는 갈리치아의 아들 매튜 카루아나 갈리치아는 "정보가 완전히 차단돼 있다. 우리 가족도, 기자도, 국민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고 항의했다.
페네치 측은 무스카트 총리가 자신의 측근들을 보호하고자 페네치 제안을 거절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페네치 측 변호인은 조지 벨라 몰타 대통령에게 직접 형사 면책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 책임자가 스켐브리와 유착 관계에 있다며 그를 수사 라인에서 배제해달라는 청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이런 가운데 외신들은 스켐브리가 48시간의 체포 시한이 만료돼 전날 석방 조치됐다고 전했다. 경찰은 그가 갈리치아 살해에 가담했다는 구체적인 물증 또는 진술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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