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일 SNS 통해 자발적 조직…미·이란 세력대결 해석도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지난달 1일(현지시간) 실업난과 정부의 무능, 부패를 규탄하면서 시작된 이라크의 반정부 시위가 30일 꼭 두 달이 지났지만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실탄 발포를 동원한 군경의 유혈 진압으로 두 달간 시민 사망자가 400명을 넘겼다.
이라크 정치권의 고질적인 부패와 만성화한 민생고가 단기간에 해결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정부와 의회는 시위 자제와 강경 진압 외에는 시민이 흘린 피에 마땅한 다른 대응이 없는 상황이다.
아델 압둘-마흐디 이라크 총리는 지난달 시위 초기부터 정부의 부패 청산과 개혁 조처를 수차례 약속했으나 이후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변화를 보이는 데 결국 실패했다.
28∼29일 수도 바그다드를 비롯해 나시리야, 나자프 등 이라크 남부에서 군경의 발포로 50여명의 사망자가 나자 압둘-마흐디 총리는 29일 밤 사퇴를 선언했다.
내각 책임제인 이라크 통치 체제를 고려하면 정파간 이익 경쟁이 치열한 의회의 구도상 총리가 시위를 진정하기 위해 실제로 할 수 있는 일과 권한이 제한된 측면이 있다.
그의 사퇴가 유혈 사태를 멈추고 이라크 정치권이 일신할 수 있는 전환적 계기가 되리라는 전망은 그리 크지 않다.
바그다드에서 시위에 참여한 시민 누르(30)씨는 29일 알자지라 방송에 "총리 사임은 이제 첫걸음일 뿐이다"라며 "반정부 시위를 중단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자이나브(29)라는 시민도 이 방송에 "사람이 이렇게나 많이 죽었는데 총리가 물러난다고 해서 이라크 국민이 만족할 수는 없는 일이다"라며 "현 의회가 해산되고 유엔의 감시 아래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실시돼야 비로소 기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라크는 2014년부터 3년에 걸친 이슬람국가(IS) 사태에서 겨우 벗어났지만 이번 대규모 장기 반정부 시위로 다시 대위기를 맞게 됐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사담 후세인 독재 정권이 종식됐으나, 이라크 정치권은 친미, 친이란 진영으로 나뉘어 정쟁이 끊이지 않았고 석유수출국기구(OPEC) 2위의 산유국임에도 그 과실이 국민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이번 시위의 성격을 놓고 시위 초기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자발적으로 조직됐고, 특정 정파나 종파가 주도하지 않았다는 분석이 대체적이었다.
하지만 시위가 장기화하면서 이라크를 둘러싼 관련국의 세력 대결로 규정되는 분위기다.
미국 언론은 이란의 내정 간섭에 쌓인 이라크 국민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달 들어 이라크 주재 이란 영사관 두 곳이 시위대에 습격받았고 이란과 종파적으로 같은 시아파가 주로 거주하는 이라크 남부가 시위의 중심지라는 사실이 그 방증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란 정부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이 이란에 우호적인 이라크 정부를 전복하려고 시위 중 폭력 행위를 사주·지원했다고 반박했다.
이라크 현 의회와 정부에서 친이란 세력의 영향력이 큰 만큼 이란 정부는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반정부 시위에 대해 아무래도 수세적인 처지다.
이런 배경 때문에 미국은 의회 해산과 재선거를, 이란은 현 정치 구도 안에서 대대적인 개혁 조처를 이라크 정치권에 주문한다.
이라크 반정부 시위에서 이란의 내정 간섭을 배격하는 목소리가 크다고 해서 미국의 개입을 반기는 뜻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만큼 수십년간에 걸친 외세 개입에 이라크 국민은 염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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