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이래 다섯번째…자연재해·오버투어리즘·인구감소 등에 절박감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이번엔 성공할 수 있을까?'
반세기 가까이 행정구역 독립을 꿈꿔온 이탈리아의 베네치아가 1일(현지시간) 자치권 획득을 위한 다섯번째 주민투표에 나선다.
ANSA 통신과 영국 선데이타임스 등에 따르면 주민투표는 이날 오전 베네치아와 본토에 있는 메스트레지역에서 동시에 실시됐다.
일반적으로 베네치아라고 하면 매년 2천만명의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1천500년 역사의 세계적인 수상 도시를 생각한다.
하지만 행정구역상으론 베네치아 메트로폴리탄 시티(광역시)에 속하는 하나의 지역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혹자는 산마르코광장과 성당, 리알토 다리 등 인류문화유산이 밀집한 베네치아를 '베네치아 역사 중심지구'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베네치아 광역시는 크게 118개 섬으로 이뤄진 베네치아와 본토의 메스트레 등 두 구역으로 나뉜다.
역사적으로 베네치아와 메스트레는 서로 독립적인 지역이었으나, 베니토 무솔리니를 중심으로 한 파시스트 통치 때인 1926년 하나로 합쳐졌다.
부유한 섬 베네치아가 본토의 가난한 인접 지역을 지원함으로써 동반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고 한다.
통합 이후에도 베네치아는 역사성과 자부심을 안고 사실상의 독립적인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베네치아 인구가 메스트레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970년대 인구 분포가 역전되면서 문제가 됐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17만5천명에 달했던 베네치아 인구는 3분의 1인 5만5천명으로 쪼그라들었다. 반면 현재 메스트레 인구는 13만4천명으로 베네치아의 세 배에 가깝다.
메스트레는 사실상 베네치아의 '베드타운'으로 기능하며 인구를 급속히 늘렸다.
메스트레에 거주지를 두고 베네치아에서 영업하는 상인들도 크게 늘었다. 메스트레를 거점 삼아 베네치아를 여행하는 관광객 수요도 급증해 메스트레에는 호텔과 상점, 음식점 등이 우후죽순 들어섰다.
주민들은 베네치아에 쓰여야 할 정부 예산이 메스트레로 간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관광객이 과도하게 몰리는 '오버 투어리즘'에 대한 대응 능력도 상실했다는 게 주민들의 인식이다.
이번 주민투표도 이런 배경에서 시작됐다. 자치권을 획득함으로써 메스트레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발전을 추구하겠다는 취지다. 자치권이 인정되면 베네치아는 독립적인 행정 조직과 시장을 갖게 된다.
이번 투표는 1979년과 1989년, 1994년, 2003년에 이어 다섯번째다. 그만큼 베네치아 주민의 오랜 열망이 투영돼 있다.
베네치아 자치권 찬성론자들은 이번 투표의 분위기가 과거와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지난달 187㎝까지 치솟은 조수 수위로 1966년 이후 53년 만에 최악의 물난리를 겪으며 베네치아의 낙후된 현실이 재조명됐고, 주민들 사이에 지역 발전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베네치아 자치 운동을 주도하는 변호사 조지오 수피에즈는 "베네치아는 지금 몹시 화가 나 있다. 재해에 대한 물리적 대응력은 부재하고 관광과 투기는 통제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민들이 베네치아를 떠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베네치아는 이미 메스트레의 '캐시카우'(현금수입원)으로 전락한 지 오래"라며 "이런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해법은 독립을 쟁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베네치아 광역시 당국은 베네치아의 자치권 획득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루이지 브루냐로 시장은 이번 투표를 저지하고자 소송을 내기도 했다.
당국의 소극적인 대응으로 주민투표를 알리는 포스터나 공보물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메스트레에 거주하는 니콜라 펠리카니 시의회 의원은 "광역시를 쪼개어 수십년간 지속한 거대 이슈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망상에 불과하다"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껏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강한 행정부"라고 주장했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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