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70주년 나토에 "방위비 더 내야"…韓日에도 무차별 압박

입력 2019-12-04 06:32   수정 2019-12-04 06:52

트럼프, 70주년 나토에 "방위비 더 내야"…韓日에도 무차별 압박
NATO 정상회의 참석차 영국 방문…체류 내내 방위비 불만 표출
한국엔 주한미군 거론하며 증액 압박…"한국 외에도 5개국 더 있어"

(워싱턴=연합뉴스) 류지복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 동맹을 향해 방위비 분담의 대폭 증액을 요구하며 무차별 압박을 가하고 있다.
동맹국이 미국에 의존해 자국 안보에 필요한 방위비를 제대로 지불하지 않았다는 '무임승차론'을 최근 부쩍 강조하며 동맹을 향한 전방위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가 미군을 용병화하는 것이자 동맹의 균열을 초래할 것이라는 미국 내부의 우려조차 아랑곳하지 않는 움직임이다.

3일(현지시간)부터 영국 런던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가 대표적이다.
이번 회의는 미국과 유럽의 집단안보체제이자 세계 최대의 군사동맹인 나토 창설 70주년을 축하하는 자리가 돼야 정상이지만, 회원국들은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을 방위비 관련 발언에 잔뜩 긴장하는 표정이다.
줄곧 나토 회원국의 방위비 분담이 적다는 불만을 표출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영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우리는 너무 많이 내기 때문에 공정한 상황이 아니다"라며 방위비 증액 압박을 공언했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한 듯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을 열어 유럽과 캐나다가 2016년부터 추가로 투자한 방위비가 1천300억달러에 이르고 2024년 말까지 누적 증가액이 4천억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오는 2024년까지 나토 회원국이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 수준으로 늘리기로 약속한 가운데 올해 9개국이 해당 가이드라인을 맞출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과 나토 회원국은 이번 정상회의 전 나토 예산 중 미국 부담분을 기존 22%에서 16%로 낮추기로 합의하는 등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 관리'에 나서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런 상황을 놓고 "이번 모임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복을 극대화하고 나토나 동맹을 날려버릴 어떤 가능성도 최소화하도록 연출됐다"고 비꼬았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등을 통해 나토 회원국의 방위비 증액을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만나 미국의 GDP 대비 방위비 지출 비율이 가장 높고 GDP의 1%도 쓰지 않는 회원국이 있다고 비판한 뒤 "공정하지 않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달 한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의 리더십 부재 등을 언급하며 나토가 뇌사상태에 빠져있다고 비판한 데 대해서도 "아주 못된 발언"이라고 맹비난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회동 후 기자들과 만나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에 대해서는 무역분쟁 가능성을 제기했고, 특히 나토 회원국이 2024년까지 GDP 2% 수준으로 방위비 지출을 늘리기로 한 것이 너무 적은 만큼 4%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은 나토에 그치지 않고 한국과 일본으로도 이어졌다.
그는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과 만난 자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한국을 보호하는 데 엄청난 돈을 쓰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상당히 더 내는 게 공정하다고 본다"고 압박했다.
특히 주한미군 전부를 계속 주둔시키는 게 미국의 안보이익에 부합한다고 보느냐는 취재진 질문을 받고 "그건 토론해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어느 쪽으로든 갈 수 있다"고 언급했다. 현재 진행 중인 방위비 협상에서 주한미군 감축 카드를 꺼내 들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면서 자신이 방위비 분담 증액을 요구하는 나라가 한국 외에도 5개국이 더 있다면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일본 사례를 예시했다.
미국은 사우디가 이란 등으로부터 석유시설 공격을 막도록 800명가량이던 병력을 3천명 정도로 늘렸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가 이 비용을 모두 부담하기로 했다고 주장하며 '모범 사례'로 꼽았다.


또 일본에 대해서는 "내 친구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도 말했다. 당신이 우리를 도와줘야 한다고, 우리가 많은 돈을 내고 있고 당신네(일본)는 부자나라라고 했다"면서 "그는 많은 것을 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미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지난달 중순 미국이 주일미군 주둔 비용으로 80억 달러를 요구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일본 교도통신도 미국이 현행 5배를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논리는 동맹을 '부자나라'와 '가난한 나라'로 구분한 뒤 부자나라의 경우 미국 군사력에 무임승차하고 있는 만큼 방위비를 대폭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경우 돈이 없어 도움이 필요한 나라가 있다. 있어선 안 되는 일이 진행되는 엄청난 문제가 있다"며 "이는 다른 상황"이라고 말했다. 가난한 나라는 미국이 지원하더라도 부자나라는 자신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행보를 놓고 미 언론은 냉랭한 평가도 내놓고 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최고의 혼란유발자'(disruptor-in-chief·트럼프 대통령 지칭)가 나토 회동에 불도저처럼 밀고 들어갔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다가오는 영국 총선에 혼란을 일으키길 원치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대신 다른 모든 것에 혼란을 일으켰다"고 비판했다.
jbryo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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