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공군소위 총격 테러에도 비난 자제…무기 수출제한도 거부
여야 "사우디, 수사에 협조해야"…트럼프는 "사우디가 비탄" 딴소리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우디아라비아 사랑'이 점점 더 고립돼가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8일(현지시간) 진단했다.
지난 6일 플로리다의 펜서콜라 해군 항공 기지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을 연방수사국(FBI)이 테러 행위(act of terrorism)로 추정한다고 밝힌 후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에서도 용의자의 모국인 사우디의 적극적인 수사 협조를 요구하고 나섰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어서다.
용의자는 사우디 공군 소위인 훈련생 무함마드 사이드 알샴라니(21·사망)로, 이 사건에 대해 미 의회에서도 당파를 떠나 '테러'라고 비판하고 있다. 또한 용의자를 미국으로 초빙한 외국인 군사 훈련 프로그램의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까지 사우디에 공식적으로 전면적인 협조를 요청하지 않았다. 이 사건을 '테러'라고 지칭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트위터와 TV 카메라 앞에서 사우디가 이번 사건과 관련해 비탄에 빠졌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 사건 직후 트위터 계정을 통해 "사우디 살만 국왕의 전화를 받았다"면서 살만 국왕이 희생자 가족에게 진심으로 애도를 표했다고 말했다.
이어 7일에는 자청해서 기자들 앞에 서더니 "사우디가 비탄에 빠져있다"며 "국왕은 희생자 유족을 돌보는 일에 참여하고 있고 이번 사건으로 매우 매우 비탄에 빠졌다. 왕세자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대통령의 태도를 지지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심지어 WP의 칼럼니스트 맥스 부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의 공보장관 오디션에 참가했다"고 꼬집었다.
공화당조차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우디를 향해 강경한 목소리를 쏟아내는 분위기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확고한 지지자인 맷 개츠 공화당 하원의원도 8일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을 테러로 규정하면서, 군사 훈련을 위해 미국을 찾는 외국인들에 대해 더욱 엄격한 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츠 의원은 또한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껏 이슬람국가 출신자들에 의한 총격사건이 발생하면 목소리를 높여가며 테러라고 규정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는 점도 이례적이다. 사우디는 '전략적 이익'이 걸린 나라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백악관과 의회 관계자들에 따르면 민주당은 이번주 진행된 군비 예산 협상의 일환으로 사우디에 대한 무기 수출을 제한하고자 했으나 백악관이 거부했다고 WP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평소 사우디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인권 상황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고 유가만을 들먹였다.
지난해 정보기관이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을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지시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을 때도 트럼프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사우디가 미국에 엄청난 투자를 약속했고 이란을 상대하는 데 전략적인 파트너라는 이유로 사우디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사우디 주도 아랍동맹군이 예멘 내전에 개입해 무고한 사상자를 내는 상황에 대해 미 의회가 비판하고 있지만, 트럼프는 이 역시도 침묵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오랜 친구이자 인터넷매체 뉴스맥스의 크리스토퍼 루디 사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전략적 이익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권은 그다음 문제"라며 "사우리는 우리에게 최고의 동맹"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조너선 앨터먼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중동프로그램 국장은 "대통령이 사우디에 공식적으로 수사 협조를 요청하지 않으면 사우디에 면죄부를 줄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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