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경 맞은 '할머니' 범고래 '손주' 돌보는 중요 역할

입력 2019-12-10 11:14  

폐경 맞은 '할머니' 범고래 '손주' 돌보는 중요 역할
연구팀 "인간과 범고래 등만 갖는 폐경 진화 설명"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폐경기 이후 '할머니' 범고래들이 '손주'들의 생존을 돕는 역할을 한다는 연구가 나왔다.
폐경은 인간 이외에는 범고래를 비롯한 4종의 이빨을 가진 고래만 겪는 독특한 현상으로, 폐경의 진화론적 의미를 해석하고 멸종 위기에 처한 범고래를 보호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주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영국 요크대학에 따르면 이 대학 생물학과의 댄 프랭크스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태평양 북서부 미국과 캐나다 연안에 서식하는 두 개의 범고래 무리를 대상으로 미국 고래연구센터와 캐나다 해양수산부(DFO)가 수집한 36년간의 자료를 분석해 이런 결론을 얻었다고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NAS) 최신호에 밝혔다.
범고래 무리는 여러 가족이 모인 범고래 떼들이 모여 형성된다.
연구팀은 폐경으로 더는 새끼를 낳지 못하는 범고래들이 가족 내에서 새로 태어난 새끼를 돌보는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임으로써 이들이 생존하는 데 크게 기여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범고래의 주요 먹이인 왕연어(chinook salmon)가 부족한 해에 '할머니'가 없는 새끼 범고래들이 더 큰 타격을 받는 것으로 나타나 먹이가 없을 때 폐경 범고래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범고래 수컷은 대부분 30살을 넘기지 못하지만, 암컷은 30~40살까지 새끼를 낳으며 폐경 뒤에도 수십 년을 더 산다.
앞선 연구에서는 이런 폐경 범고래들이 경험이 많고 지식이 쌓여 연어 사냥을 할 때 지도자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발표된 바 있다.



연구팀은 직접 낳은 새끼가 있는 범고래는 폐경 범고래만큼 무리 내 다른 새끼 범고래를 돌볼 수 있는 여력이 없으며, 폐경은 '할머니' 범고래에게 '손주'의 양육을 도울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해주는 것으로 봤다.
이는 인간과 범고래를 비롯한 극히 일부 종만 폐경을 갖는 미스터리를 설명해주는 실마리라고 연구팀은 해석했다.
프랭크스 박사는 "폐경 범고래의 죽음은 무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이는 범고래 무리의 미래를 평가할 때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일 수 있다"면서 "연어가 줄어드는 상황이어서 범고래 무리에서 '할머니' 범고래의 역할이 훨씬 더 중요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논문 공동저자인 엑시터대학의 대런 크로프트 교수는 "폐경은 인간과 범고래를 비롯한 이빨을 가진 4종의 고래에게서만 진화해온 것으로, 수명이 아직 많이 남은 상태에서 생식이 중단되는 이유는 오랫동안 진화의 수수께끼가 돼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연구 결과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폐경이 된 '할머니' 범고래들이 '손주'를 더 잘 도울 수 있고, 범고래 가족에게 돌아가는 이런 혜택이 범고래에서 폐경이 진화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omn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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