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률 2.0∼2.3% 범위 전망…반도체 제한적 회복 예상
'저성장·저금리' 장기화 부작용 우려…연합뉴스 서면인터뷰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김연숙 기자 = 국내 주요 은행장들은 내년도 경기 여건이 올해보다는 약간 나아질 것으로 보면서도 회복의 강도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고 대체로 내다봤다.
국내 산업이 내년 한 해도 쉽지 않은 시기를 보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그나마 반도체 업종이 어느 정도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기대했다.
저성장·저물가 현상의 지속은 부채 증가와 자산가격 왜곡을 초래해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다며 위기감을 표했다.
◇ 경기, 올해보다 개선될 요인 많아…민간 회복력은 미약
신한·KB국민·우리·KEB하나·NH농협 등 주요 은행장들은 22일 연합뉴스와 가진 서면 인터뷰에서 내년 중 경제가 2.0∼2.3% 수준의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올해(한국은행 전망치 기준 2.0%)와 비슷하거나 소폭 개선될 것으로 보는 것이다. 모두 잠재성장률(2.5∼2.6%)엔 미치지 못할 것으로 봤다.
진옥동 신한은행장은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 하강이 뚜렷해진 상황이지만 내년은 기대 요인들이 올해보다 조금은 더 많은 환경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무역분쟁이 추가로 악화할 가능성은 적어졌지만 예측 가능성은 커지고 있고, 확장적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글로벌 경제에 공통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내년 성장률은 2.2∼2.3% 전망했다.
허인 KB국민은행장도 "미중 1차 무역협상이 타결되면서 투자와 소비심리가 개선될 가능성이 커졌고, 반도체 경기도 내년 하반기 이후 반등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지식재산권, 무역 불균형 등에서 미중 양국의 견해차가 여전하고, 무역 갈등이 경제 패권 전쟁으로 장기화할 이슈라는 점에서 불확실성이 잠재된 상황"이라며 내년도 성장률을 2.0∼2.2%로 내다봤다.
손태승 우리은행장은 내년 전망에 대해 "올해와 비슷한 2% 수준으로 예상하지만, 일본 수출규제와 미중 무역분쟁이 완화되고 특히 반도체 수출이 예상보다 많이 늘어날 경우 성장률이 2.3% 내외로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성규 KEB하나은행장은 "내년 우리 경제가 2%대 초반 성장을 달성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내년 성장률을 2.0%로 전망했다.
지 행장은 "경기 순환적인 측면에서 보면 올해 하반기 중 저점을 통과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면서도 "민간 부문의 회복력이 미약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이대훈 NH농협은행장은 "기저효과와 대외 여건 개선이 맞물려 내년 성장률이 올해보다 개선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2.2% 수준의 성장을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미국의 'G1' 체제 강화로 중국에 대한 견제 지속 가능성이 큰 가운데 글로벌 공급사슬에서 중국 주도권은 점진적으로 약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 반도체 제한적 회복 기대…석유화학·철강 등 부진 지속
주요 은행장들은 내년에 반도체를 중심으로 전기·전자 업종이 상대적으로 잘 해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석유화학, 철강, 디스플레이 업종은 내년에도 힘든 시기를 겪을 것으로 여겼다. 유통, 주택건설 등 내수업종도 여건이 어려울 것으로 봤다.
허인 행장은 "산업 전반적으로 제한적 회복세를 보이거나 기저효과 등에 따른 성장에 국한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그나마 반도체 업종이 경기 저점을 지나 내년 완만한 수요·가격 반등으로 소폭의 회복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성규 행장도 "반도체의 경우 가격 급락이 마무리 단계에 진입하며 내년 기업들의 수출액과 영업이익 규모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다만, 재고 수준이 높고 설비증설 경쟁 리스크가 일부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손태승 행장은 "내년에도 전반적으로는 글로벌 수요 회복세가 제한적이겠지만, 5세대 이동통신(5G), 전기차 보급 확대 등 기술 트렌드 변화의 수혜가 예상되는 반도체, 전기·전자, 2차전지 산업의 성장성과 수익성이 호전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정보통신, 정밀화학, 휴대전화도 호조업종으로 지목됐다.
진옥동 행장은 "빅데이터 관련 수요가 확대되고 있는 데이터베이스 제공업, 자율 주행차 및 사물인터넷(IoT) 분야 확산에 따른 계측기·센서 등 전자기기 부품 분야가 호조를 보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5G 서비스 본격화, 폴더블폰 출시 등 교체수요 확대로 내년 휴대전화 수요 확대가 기대되며, 소재·부품·장비 국산화를 위한 정부 지원 및 국내기업 투자가 확대되는 정밀화학 분야도 기대 업종으로 진 행장은 꼽았다.
이대훈 행장은 반도체 외에 제약·바이오, 의료기기를 포함한 정밀기기의 호조를 기대했다. 환경산업 전망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철강, 디스플레이, 화학 업종은 글로벌 공급과잉으로 하반기에도 업황 부진이 이어질 것으로 보는 은행장들이 많았다. 주택건설과 오프라인 기반의 유통업, 항공운송도 부진업종으로 꼽혔다.
자동차·조선도 신중론이 우세했다. 허인 행장은 "자동차의 경우 현대기아차의 선전이 예상되나 국내외 소비 둔화와 양극화 심화가 예상되고, 조선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발주가 늘고 선가도 오르겠지만 전체 수주량이 예년 수준을 회복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봤다.
◇ 저성장·저물가·저금리 고착화 우려…"자산버블 위험"
주요 은행장들은 저성장, 저물가, 저금리 현상이 국내외적으로 지속하고 있는 상황이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고 지목했다.
진옥동 행장은 "미국을 제외한 주요 국가의 경제 상황이 저성장, 저물가의 기로로 들어서면서 글로벌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있다"며 "금리, 성장률, 물가상승률의 동반 하락은 금융기관에 근본적인 변화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지성규 행장도 비슷한 견해를 냈다.
그는 "주요국의 통화완화 정책이 투자나 생산 등 실물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제한적인 반면, 일부 위험자산 가격의 버블 위험이나 은행ㆍ보험권의 실적 저하와 기능 장애를 초래하고 있다는 진단이 확산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 가능성과 기업실적 악화 등에 따른 부채 위험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었다.
손태승 행장은 "정부가 부동산 시장 안정화 정책을 연달아 발표하는 가운데 부동산 관련 대출은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며 "부동산 가격 하락 시 금융기관의 건전성 관리에도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대훈 행장은 "경기 불확실성 지속으로 기업 경영여건이 악화하고 있고, 저성장·저물가 등에 따른 취약한 자영업자의 채무불이행 위험도 증가하고 있다"며 "이는 은행의 자산 건전성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우려가 크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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