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소동' 닷새만의 공개 사과…한진家 갈등 일단락될까

입력 2019-12-30 14:46  

'성탄절 소동' 닷새만의 공개 사과…한진家 갈등 일단락될까
여론 악화에 부담…박창진 "내부 노동자 사기 저하로 이어져"
경영권 다툼 불씨 남아…당분간 갈등 계속될 듯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성탄절에 발생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어머니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 간 말다툼 소동이 벌어진 지 닷새 만인 30일 양측이 공동명의의 사과문을 내놨다.
총수 일가 내부의 물리적 다툼이 외부로 공개된 것도 이례적이지만 이런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지 이틀 만에 서둘러 사과문을 내고 사태 수습에 나선 것은 이전의 '땅콩 회항'과 '물컵 갑질'로 얻은 일종의 '학습 효과'라는 분석이다.
이미 앞선 두 사건으로 한진그룹 총수 일가가 사회적 공분을 산 만큼 이번 소동으로 또다시 여론이 악화하는 것은 내년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서로는 물론 그룹 전체에도 부담이라는 판단에서다.
이날 오전 이 고문과 조 회장은 공동명의의 사과문을 내고 진화에 나섰다.
이들은 사과문에서 "조원태 회장은 어머니인 이명희 고문께 곧바로 깊이 사죄를 했고 이명희 고문은 이를 진심으로 수용했다"며 "저희 모자는 앞으로도 가족 간의 화합을 통해 고 조양호 회장의 유훈을 지켜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많은 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깊이 사죄드린다"라고도 했다.
이 고문과 조 회장의 사과문은 '성탄절 소동'이 벌어진 지 닷새 만에 나왔다.
앞서 지난 28일에는 조 회장이 성탄절인 25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있는 어머니 이 고문의 자택을 찾았다가 이 고문과 언쟁을 벌이고 이 과정에서 화병과 유리창 등이 깨지며 이 고문 등이 경미한 상처를 입은 사실이 외부에 알려졌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003490] 부사장이 소동 이틀 전인 23일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원을 통해 공개 비판에 나선 것에 대해 조 회장이 어머니 이 고문에게 누나의 '반기'를 묵인해 준 것 아니냐는 불만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로 전해졌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그룹 경영권을 둘러싼 남매간 갈등이 총수 일가 전체의 갈등으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제기하기도 했다.
특히 내년 3월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을 둘러싼 표 대결이 예상되는 만큼 이 같은 내부 갈등은 자칫 총수 일가의 경영권 상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재계 안팎의 이목이 쏠렸다.
현재 한진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진칼[180640]의 지분은 조 회장 6.52%, 조 전 부사장 6.49%, 조현민 한진칼 전무 6.47%, 이 고문 5.31%로 유족 4명의 지분율이 엇비슷한 상황이다.
총수 일가의 지분은 특수관계인의 지분까지 합하면 총 28.94%인 데다 한진그룹의 '백기사'인 델타항공은 10.0%, 역시 그룹의 우호 세력으로 알려진 반도건설이 계열사인 대호건설을 통해 한진칼의 지분 6.28%를 갖고 있기 때문에 우호지분 이탈을 막아야 사내이사 재선임이 가능하다.

한진그룹 일가의 경영권을 위협해 온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가 그동안 꾸준히 한진칼의 지분을 매입해 현재 17.29%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우호지분 중 누구라도 KCGI와 손잡을 경우 경영권 방어가 힘들어질 수 있다.
KCGI는 지난 6월 한진칼 지분(10.00%) 취득으로 주요 주주가 된 델타항공에 서신을 보내 "감시와 견제 역할을 동료 주주로서 함께하자"고 제안하며 델타항공이 총수 일가의 백기사 역할을 할 가능성을 견제하는 등 한진그룹 지배구조 개선 등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세를 확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반도건설이 한진칼의 지분을 추가 매집하는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나타나기도 해 내년 주총을 앞두고 주요 주주간 합종연횡이 어떻게 이뤄질지 업계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 회장도 이 같은 상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캐스팅보트'를 쥔 어머니 이 고문에게 즉각 사죄하고 가족 간의 단합을 꾀하는 모양새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고문 역시 아들과의 갈등을 외부로 공개한 것이 이 고문 측이라는 얘기가 나오며 여론이 한층 악화하자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남매의 난'에 이어 '성탄절 소동'까지 알려지며 한진그룹 총수 일가에 대한 비판 여론은 거세졌다. 대한항공 직원들 사이에서는 "총수 일가가 물러나고 전문 경영인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박창진 대한항공직원연대 지부장은 이날 YTN라디오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이런 행동을 사내에서도 스스럼없이 해왔지만 경영권 문제로 외부에 이렇게 자꾸 이분들의 전횡이 알려지고 이게 내부 노동자들의 사기 저하로 이어져서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모자가 공동명의로 입장문을 내기는 했지만 재계 안팎에서는 실제로 그룹 경영권을 둘러싼 가족 간의 힘겨루기가 마무리됐다고 보기에는 이르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당장 공식적으로 '반기'를 들고 나선 조 전 부사장과의 갈등은 아직 봉합되지 않은 상태다. 조 전 부사장은 고 조양호 회장의 '공동 경영'이라는 유훈을 언급하고 나서며 사실상 경영 복귀를 요구하고 나섰지만 언제 조 전 부사장의 복귀가 가능할지는 알 수 없는 상태다.
또 이미 지난달 단행한 정기 임원 인사에서 조 전 부사장은 물론 이 고문의 측근도 대부분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조 회장의 측근으로 세대교체를 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룹 경영에 있어 조 전 부사장과 이 고문의 입지가 좁아진 것도 여전히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유족 4명의 한진칼 지분이 비슷한 상황에서는 경영권 다툼의 불씨가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따라 당분간 조 회장과 다른 가족 간의 갈등 내지는 신경전은 지속할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현재 구도를 보면 조 회장 대 조 전 부사장·이 고문·조 전무의 싸움이 아니라 각자 나름의 불만을 가지고 서로 (조 회장과) 갈등을 빚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주총 때까지는 갈등이 불거졌다가 봉합됐다가 하는 일이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hanajja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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