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통치한 중동 최장 군주…사회 안정·경제 부흥 이끌어
미·이란 핵협상, 예멘 내전 중재 역할
(서울=연합뉴스) 이영섭 기자 = 중동 지역에서 가장 오랫동안 권좌를 지킨 오만의 군주 술탄 카부스 빈 사이드 알사이드(79)가 별세했다고 오만 국영통신 ONA가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구체적 사인은 공개되지 않으나 술탄 카부스는 투병생활을 오래 했다.
그는 재발한 결장암을 치료하려고 지난달 말 벨기에를 방문했다가 예정보다 빨리 귀국한 적 있다.
ONA는 11일 후계자로 술탄 카부스의 사촌인 하이삼 빈 타리크 알사이드(65)문화유적부 장관이 즉위했다고 전했다.
술탄 하이삼은 1980년대 오만 축구협회장을 역임한 스포츠 애호가로 널리 알려졌고 외교 분야의 직책을 주로 맡았다가 1990년대 중반 문화유적부 장관이 됐다.
1979년 영국 옥스포드 대학을 졸업했고, 외빈을 맞이하는 장소에 종종 모습을 드러냈다.
오만의 술탄국 기본법 6조에 따르면 왕실은 술탄이 공석이 된 지 사흘 안에 후임 술탄을 골라야 한다.
왕족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국방평의회, 최고법원 원장, 양대 협의기구의 수장들이 모여 술탄이 후계자를 적어 넣어둔 봉투를 열어 그 지명자를 새 국왕으로 정한다.
ONA는 이 봉투가 이날 개봉됐다고 보도했다.
슬하에 자녀를 두지 않은 술탄 카부스는 후계자를 공식적으로 지명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1997년 인터뷰에서 후계자 이름을 담은 봉투를 봉인했다고 밝힌 바 있다.
술탄 카부스의 장례는 11일 수도 무스카트에서 국민적 애도 속에 치러졌고 왕실 묘역에 안장됐다.
1940년에 태어난 그는 1970년 영국의 도움을 받아 무혈 쿠데타로 집권한 뒤 오만을 50년간 통치했다. 중동의 전제군주제 국가 가운데 최장수 집권이다.
30세에 집권한 술탄 카부스는 국무 총리직과 재무장관, 국방장관, 외무장관직을 겸하면서 권력을 점차 장악해갔다.
그는 남부 도파르 지역 반군을 영국, 요르단, 이란의 지원을 받아 격퇴하고 반군 지도자들에게 공직을 부여하며 1962년 시작된 반란 사태를 집권 6년 만에 가라앉히는 등 사회 안정화에도 이바지했다.
이후 그는 석유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를 국내 기반 시설과 군에 투자하며 국민에게 '르네상스 군주'로 불리며 추앙받았다.
술탄 카부스의 통치 아래 오만은 '누구의 적도 아닌 모두의 친구'라는 기조의 중립 외교를 펼치며 역내 중재자로 거듭났다.
오만은 미국과 이란이 2015년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에 서명하는 데 중재자 역할을 했으며,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멘 반군 후티의 협상도 오만에서 이뤄져 왔다.
2017년 6월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이 카타르와 단교했을 때도 오만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았다. 사우디와 적대적인 이란과도 관계가 원만하다.
이 때문에 오만은 '중동의 스위스', 술탄 카부스는 '중동의 비둘기'라는 별칭을 얻었다.
술탄 카부스가 공개 석상에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8년 10일 오만을 방문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회담했을 때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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