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개헌제안' 의도는…"지지도 복원 시도? 집권 연장 계획?"(종합)

입력 2020-01-16 19:17  

푸틴 '개헌제안' 의도는…"지지도 복원 시도? 집권 연장 계획?"(종합)
"1993년 채택 헌법 개정 필요·권력 민주화 요구 수용한 '판흔들기'"
"퇴임 후에도 1인자 유지 노려…덩샤오핑·리콴유 방식 권력연장 가능"
CNN "다시 총리 맡을 수도"…NYT "불확실성 키워 레임덕 차단 의도"



(모스크바·서울=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하채림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5일 연례 국정연설에서 대통령 임기 제한, 권력 분점 등을 포함하는 부분적 개헌을 전격 제안하고 나서면서 그 의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모스크바 정계와 러시아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와 관련한 다양한 분석과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현 러시아 헌법이 옛 소련 붕괴 직후인 1993년 만들어져 개정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그동안 꾸준하게 제기돼 온 만큼 푸틴 대통령이 이같은 사회적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개헌을 제안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동시에 2021년 총선과 2024년 대선 등 중요 정치 일정을 앞두고 자신의 권력 구도를 유지하기 위해 미리 법적 기반 마련에 나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에선 현행 헌법이 소련 붕괴 후 독립 러시아가 탄생한 정치·경제·사회적 혼란기에 만들어져 정치·사회가 상당 정도 안정화하고 경제 수준도 크게 높아진 현 러시아의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특히 개방기 러시아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강력한 권력을 몰아줬던 헌법 조항들을 수정해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면서 총리와 지방 정부 수장, 의회 등의 권한을 강화하는 정치 민주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푸틴은 국정연설에서 같은 인물이 대통령을 두차례까지만 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상·하원의 권한을 크게 늘리며, 주지사 등 지방 정부 수장들이 중심이 된 '국가평의회'를 헌법기관화해 역할을 강화하는 등의 방안을 제시하면서 개헌과 관련한 기존 여론의 요구를 상당 정도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에 푸틴의 개헌 제안과 뒤이은 내각 총사퇴 수용 등이 자신의 장기 집권에 따른 국민 피로감과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비판 여론, 심각한 경제난으로 인한 주민들의 불만을 달래고 추락하는 정부에 대한 지지도를 복원하려는 '판흔들기'라는 해석이 나온다.
동시에 주로 서방 전문가들 사이에선 푸틴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개헌 제안이 2024년 퇴임 이후에도 일인자 지위를 유지하려는 계산과 연관된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현행 러시아 헌법의 대통령 중임 제한 조항에 따르면 대통령은 3회 연임할 수 없다.
2000년 5월 처음 대통령에 취임한 푸틴은 이 조항에 따라 2008년 물러나 4년간 총리직을 수행하다가 2012년 대통령직에 복귀했다.
서방의 상당수 러시아 전문가와 러시아 야권은 또다시 3연임 제한을 앞둔 푸틴 대통령이 이번에도 권력을 내려놓지 않으리라 예상한다.
크렘린궁 보좌진 출신의 정치 분석가 알렉세이 체스나코프는 "푸틴이 어떤 지위에 오를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가 'No.1 인사'로서 역할을 유지할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고 진단했다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가디언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등과 달리 푸틴 대통령이 중임 제한을 푸는 개헌을 모색하지 않는 것은 민심 이반 위험을 의식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2011~2012년 당시 총리직에 있던 푸틴이 다시 대선에 출마한다는 발표 후 반발 시위가 확산했는데, 이는 푸틴 집권기 반정부 시위 중 가장 강력한 것이었다.


이날 제시한 개헌안으로 볼 때 푸틴 대통령의 구상은 후임 대통령의 권한은 약화시키고 자신은 다른 직위나 비공식 지위를 맡아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우선 앞서 2008년에 했던 대로 다시 총리직을 맡는 방안이 가능하다고 미국 CNN 방송이 전망했다.
국가평의회 권한 강화 계획에 비춰, 대통령 퇴임 후 푸틴이 이 조직의 수장을 맡아 국정을 통제하는 방식도 거론된다.
상·하원 의장과 주지사 등의 지방정부 대표, 하원 원내교섭단체 대표 등으로 구성된 국가평의회는 현재 대통령 자문기구이며, 역할이 크지 않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은 예상 가능한 푸틴의 시나리오로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나 덩샤오핑(鄧小平) 중국 최고지도자 모델을 꼽았다.
덩샤오핑은 1997년 사망 직전까지 공식 직함 없이 중국의 일인자 자리를 지켰다.
나자르바예프는 30년 가까운 장기 집권 후 작년 3월 퇴임했지만 국가안보회의 의장직과 집권당 총재직을 유지하고 '국부' 지위를 누리면서 계속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WSJ은 푸틴 대통령이 싱가포르 지도자 리콴유 모델을 따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리콴유는 권력을 서서히 줄여나갔고, 말년까지 국가의 '후견인'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
리콴유나 나자르바예프는 장기 집권 비판을 피해 막후에서 실권을 휘두르는 방식을 택했다.
러시아 정치 분석가 발레리 솔로베이는 "권력 전환단계가 이미 시작됐다"며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집중 조명은 피하려고 할 것"이라고 WSJ에 전망했다.
장기 집권 비판과 레임덕 위험 등을 의식한 푸틴 대통령은 자세한 계획은 드러내지 않고 다양한 가능성이 담긴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전략을 택했다고 NYT는 지적했다. 불확실성으로 인해 러시아 정치 엘리트들은 불안을 느끼며 푸틴 대통령을 주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야권은 푸틴 대통령의 개헌안에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취약한 러시아 야권에서 그나마 푸틴의 '대항마'로 꼽히는 반정부 운동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는 "푸틴 정권의 단 하나 목표는 (중략) 유일한 종신 지도자가 국가 전체를 소유하고 자신과 측근들이 국부를 나눠 갖는 것뿐"이라고 트위터에 썼다.
그는 "푸틴이 2024년에 권좌에서 물러난다고 말하는 사람은 정말로 천치이거나 사기꾼, 아니면 둘 다"라고 덧붙였다.
나발니는 또 푸틴 대통령의 권력 독식을 비판하며 "새 총리 후보는 푸틴 보디가드 2명, 푸틴의 마사지사, 푸틴의 정원사, 알리나 카바예바(푸틴의 애인으로 소문난 전 리듬체조선수)의 운전사"라고 꼬집었다.
tr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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