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끝없는 확전 일단 멈춰…美 대선까지 시간 확보
여전한 美관세 속 실물경제·금융 위험 통제, '굴욕협상' 비판 제어도 과제
농산물·공산품 등 대거 '구매선 변동' 예고…제3국 불이익 가능성도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미국과 중국이 오랜 진통 끝에 15일(현지시간) 1단계 무역 합의에 최종적으로 도달해 중국 경제를 강하게 짓눌러온 불확실성이 다소 완화됨에 따라 그간 미국의 파상 공세에 수세적 태도로 일관하던 중국이 일단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미국이 대중 관세를 무기로 중국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끝에 도출된 이번 무역 합의는 미국이 대중 관세를 일부 유예하거나 완화하는 대가로 중국이 향후 2년간 2천억 달러어치에 달하는 막대한 상품과 서비스를 추가 구매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외교가에서는 중국이 막대한 돈을 들여 '일시적인 평화'를 사면서 미국의 대중 정책에서 중대 변곡점이 될 올해 11월 미국 대선까지 시간을 벌어두는 전략을 택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 "미국에 '먹을거리' 던져주고 시간 번 것"
2018년 7월 미국의 첫 대중 고율 관세 부과를 시작으로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1∼2위 경제 대국 간 무역전쟁이 벌어지면서 중국 경제는 줄곧 큰 부담을 받았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집권 이후 산업 구조 고도화와 부채 감축(디레버리징)을 핵심으로 한 '높은 질적 발전'에 초점을 맞춘 발전 전략을 추진하면서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점차 둔화하는 추세를 보였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시위 유혈 진압 사태로 인한 서방의 제재 이후 가장 큰 대외 위기로 평가될 수 있는 미국과 무역전쟁은 중국의 경기 둔화를 가속화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키웠다.
무역전쟁이 터진 2018년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6.6%로 1990년 이후 28년 만에 가장 낮았다.
작년 1∼3분기 경제성장률은 6.2%로 더 낮아졌다. 시장에서는 작년 경제성장률이 6.1%가량이 될 것으로 예측한다.
중국 경제성장률은 여전히 다른 주요 국가보다는 월등하게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정부의 관리 목표를 벗어난 빠른 속도의 경기 둔화는 기층 민중의 삶의 질을 급속도로 저해하면서 사회 안정에 큰 불안 요인이 돌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
공식적인 통계 수치 너머에 있는 실물 경기의 어려움과 및 금융 위험 고조는 중국 당·정에 큰 고민을 안겼다
고율 관세로 대미 수출이 급감하면서 여러 수출 기업에서 대량 감원이 잇따랐고, 한계 기업의 채무 불이행(디폴트)과 도산도 늘어났다.
미래가 불안한 소비자들은 지갑을 여는 데 신중해졌다. 세계 최대인 중국 자동차 시장이 2년째 역성장한 것은 당장 긴요한 곳이 아니면 돈을 쓰지 않겠다는 급랭한 중국인들의 소비 심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경영난에 처한 기업 증가는 금융권의 부실 채권 증가로 이어졌다.
작년 중국에서는 소규모 은행들의 신용 위험이 급부상했다. 시장 원칙대로라면 몇몇 은행은 파산됐어야 했지만 중국 정부는 강제 구조조정 후 국영 금융 기관들이 경영권을 접수하게 하는 방법으로 위기를 봉합했다.
따라서 공산당 창당 100주년인 2021년을 앞두고 올해 '샤오캉 사회'(小康社會·의식주 걱정이 없이 비교적 풍족한 사회) 건설 완료를 선언해야 하는 중국으로서는 상당한 양보를 통해서라도 미국과의 관계를 안정시키는 것이 중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울러 미국이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기로 단단히 마음먹은 듯 통상 분야 외에도 군사·외교·기술·인권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거칠게 중국을 밀어붙이고 있는 가운데 중국이 향후 순조로운 발전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안정적인 미중 관계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중국의 한 외교 소식통은 "중국이 미국이 요구하는 소위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미국에 '먹을거리'를 던져주고 시간을 확보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며 "중국은 임기가 정해진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시간은 자신들의 편이라고 인식하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 "나아지는 건 없다…더 나빠지지 않는 것"
1단계 무역 합의문 최종 서명에도 중국의 부담이 획기적으로 낮아진 것은 아니다. 정확히는 '당분간 더 나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1단계 합의에도 총 3천7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미국의 고율 관세는 미국의 '협상 지렛대'로서 계속 유지된다.
따라서 중국이 여전한 미국의 대중 관세 부담 속에서 지표 이면에서 어려움을 겪는 실물 경제에 온기를 불어넣고 경제의 큰 불안 요인으로 지목되는 금융 위험을 강력히 틀어막아야 하는 부담을 여전히 짊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저명한 경제학자인 중국 헝다(恒大)연구원의 런쩌핑(任澤平) 원장은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향후 수출은 미중 무역 갈등 완화의 영향으로 약간 개선될 수도 있지만 전체적인 상황은 여전히 심각하다"며 "미중 무역 갈등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완전히 걷힌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미국에 큰 규모의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기로 한 1단계 무역 합의 체결로 중국 국내에서 '굴욕 협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을 억제하는 것도 향후 중국 정부에는 큰 과제다.
중국의 관영 언론은 이번 1단계 무역 합의가 양국의 '윈윈'을 위한 대승적 결단이라고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 대대적인 선전에 나섰는데 이는 국내에서 부정적인 해석이 나오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선제적인 여론전의 일환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과 직접 1단계 합의문에 서명하고자 하는 뜻을 내비쳤지만 시 주석은 대리인으로 류허(劉鶴) 부총리를 백악관에 보냈다.
이는 중국 안팎에서 전쟁 강화 조약처럼 비칠 수 있는 무역 합의문에 시 주석이 직접 서명하는 모습을 노출하기를 꺼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 중국이 1단계 무역 합의에서 향후 2년에 걸쳐 2천억달러(231조7천억원) 더 큰 규모의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겠다고 약속한 가운데 중국이 향후 구매 대상국을 대거 미국으로 바꾸게 되면 그간 무역전쟁으로 반사 이익을 봤던 제3국들이 상대적인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대두한다.
예를 들어 최근 2년간 중국이 미국산 대두 수입을 사실상 중단하고 남미 국가들에서 대두 수입을 크게 늘리면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톡톡한 재미를 봤다.
세계 시장에서 '큰 손'인 중국의 선택 변화는 다른 주요 상품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중국의 전체 소비량이 획기적으로 커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 중국은 자국의 실제 수요에 기반해 미국산 제품의 구매를 확대하겠다는 원칙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중국은 미국과의 구매 약속을 지키려고 중동산 원유와 가스 대신 미국산 원유와 가스 수입을 늘리고, 유럽의 에어버스 대신 보잉 여객기 구매를 대폭 확대하는 등의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보면 중국이 미국에 2천억 달러에 달하는 '무역전쟁 배상금'을 지불하는 것 같지만 사실 중국으로서는 원래 사들여 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구매선을 바꾼 것이지 실제로 더 경제적 부담을 지는 것은 아니라고 볼 여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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