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른 근거 없이 이민자에 '마약밀매자' 낙인 논란…각계 질타
튀니지 정부도 강력 항의, 외교 문제 비화 조짐…선거용 분석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반이민·난민 성향을 노골적으로 표출해온 이탈리아 극우 정치인이 튀니지 이민자를 마약 밀매범으로 낙인찍는 인종차별적 행태를 보여 비난 여론이 뜨겁다.
23일(현지시간) ANSA 통신 등에 따르면 극우 정당 동맹을 이끄는 마테오 살비니 상원의원은 최근 에밀리아-로마냐주(州) 주도인 볼로냐에서 튀니지 이민자 가정이 있는 아파트에 초인종을 누르고는 인터폰으로 대뜸 "부인, 당신 아들이 마약 밀매범이 맞냐"고 물었다.
그는 기자들과 카메라맨, 지역 주민을 대동한 채 "이 집에서 마약이 거래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사실이냐"고 묻기도 했다.
살비니 의원 측은 이러한 장면이 찍힌 동영상을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네트워크(SNS)에 그대로 공개했다.
그가 마약범죄와 관련한 어떤 근거를 갖고 이 가정을 방문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경찰도 해당 튀니지인이 관련 혐의를 받고 있는지에 대해 아직 이렇다 할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정치인이 사법 절차를 무시하고 이민자 가정을 무작정 찾아가 마약 밀매범으로 몰아붙인 행태에 정치권을 중심으로 각계의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사회적 영향력이 큰 이탈리아 주교회의(CEI)까지 '아주 부적절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언론에선 이번 일을 '인터폰 스캔들'로 부르며 살비니 행동의 부적절성을 조명했다.
튀니지 정부도 이탈리아에 정착한 자국 시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한 살비니 의원에 강한 불쾌감을 내비쳐 외교 문제로 비화할 조짐마저 보인다.
모에 시나위 이탈리아 주재 튀니지 대사는 문명국인 이탈리아에서 있을 수 없는 수치스러운 일이 일어났다며 강한 유감의 뜻을 표했다. 아울러 살비니 의원이 소속된 상원의 의장에게 항의 서한을 보냈다고 밝혔다.
현지 정가와 전문가 사이에선 이번 일이 26일 에밀리아-로마냐주 지방선거를 앞두고 반이민·난민 정서가 강한 보수 유권자를 결집하려는 '계산된 이벤트'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탈리아 내 튀니지인의 경제·사회적 권리를 옹호하는 한 민간단체는 이번 일을 "선거를 위한 살비니의 혐오스러운 선전선동"으로 규정하고 각성을 촉구했다.
마약밀매 용의자로 지목된 17살의 튀니지 청년은 살비니 의원을 상대로 법적 소송을 제기할 태세다. 이 청년은 튀니지 이민자 2세로 이탈리아 시민권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조만간 아이를 갖게 된다는 그는 "나는 축구선수일 뿐 마약 밀매자가 아니다"며 "살비니는 SNS에 공개된 관련 동영상을 내리는 게 좋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살비니 의원은 2018년 6월부터 1년2개월 간 내무장관으로 재직하며 국제구호단체의 난민 구조선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항구를 봉쇄하는 등 반난민 정책을 주도한 인물이다.
오랜 경기 침체에 시달리는 이탈리아 국민의 좌절감과 여기서 파생된 반이민·난민 정서를 정치적으로 활용한다는 비판에도 아랑곳없이 공개된 장소에서 공공연하게 이민·난민을 겨냥해 적대감을 드러냈다.
이러한 시류를 타고 동맹은 현재 전국 지지율 30%를 웃도는 최대 인기 있는 정당으로 올라선 상태다.
살비니 의원은 자신을 향한 비판에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며 "마약 밀매범이 이탈리아인인지, 튀니지인인지는 중요치 않다. 마약은 사회를 죽이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맞섰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동맹을 찍는 이는 마약과 싸움에 투표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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