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아-로마냐서 중도좌파 민주당 후보, 우파연합 후보 따돌려
위기론 대두된 연정에 숨통…칼라브리아주 선거선 우파연합 승리
반극우 정어리 운동이 '숨은 공신' 분석…민주당 대표도 감사 인사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이탈리아 연립정부의 한 축인 중도좌파 정당 민주당이 우파의 거센 추격을 따돌리고 북부 에밀리아-로마냐주(州) 지방 권력 수성에 성공했다.
연정 파트너인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의 내분 속에 위기론이 대두된 연정은 한숨 돌릴 공간을 갖게 된 반면에 고공 지지율을 구가하며 승승장구하던 극우 정당 동맹의 기세는 한풀 꺾이게 됐다.
27일 오후(현지시간) 완료된 개표 결과를 보면 민주당 소속 스테파노 보나치니 현 주지사가 51.42%를 득표해 43.63%를 얻은 우파연합 단일 후보인 동맹 소속 루치아 보르곤초니 상원의원을 8%포인트 차로 따돌렸다.
오성운동의 시모네 베니니는 3.48%로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26일 치러진 에밀리아-로마냐 지방선거는 그 규모와 상징성 등에 비춰 작년 9월 출범한 연정의 미래를 결정지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인구 기준으로 이탈리아 20개 주 가운데 네 번째로 큰 에밀리아-로마냐는 2차 세계대전 이래 줄곧 좌파가 권력을 독점해온 '좌파의 성지'로 불린다.
이런 상징적인 곳에서 민주당이 패배할 경우 국정운영 동력이 떨어지며 연정이 급속히 와해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이 선거의 정치적인 중요성을 간파한 동맹 대표 마테오 살비니는 지난 몇 달 간 에밀리아-로마냐 선거 승리에 사활을 걸어왔다. 선거 승리를 발판으로 연정을 붕괴시키고 조기 총선으로 가는 길을 열겠다는 복안이었다.
동맹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설립한 중도우파 성향의 전진이탈리아(FI), 또 다른 극우 정당 이탈리아형제들(FdI)과 선거 동맹을 맺고 단일 후보를 내세워 일전을 대비했다.
애초 민주당의 낙승이 예상됐으나 우파의 무서운 추격으로 지지율 격차가 좁혀지더니 선거를 며칠 앞두고는 판세를 장담할 수 없는 박빙 승부의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번 선거의 최종 투표율은 67.7%로 직전 선거인 2014년보다 30%포인트나 높았다. 언론 등을 통해 선거의 의미와 정계에 미치는 여파 등이 널리 알려지며 주민의 관심도가 증폭됐기 때문이다.
우파연합의 거센 도전을 뿌리친 연정은 일각에서 제기된 조기 붕괴론을 딛고 국정운영에 다소나마 여유를 가지는 계기를 갖게 됐다는 분석이다.
연정 파트너 간 끊임 없는 정책 갈등으로 국민적 신뢰가 점점 옅어지는 상황에서 선거 막판 오성운동 의원들의 연쇄 탈당에 지도부가 교체되는 악재까지 겹쳐 출구 없는 코너에 몰렸다가 기사회생한 셈이다.
반면에 70년 만에 정권을 탈환하는 역사적인 승리를 노리던 살비니의 야망은 일단 좌절됐다.
그는 선거 직전 우파가 승리하면 연정을 이끄는 주세페 콘테 총리에게 퇴거를 통보하고 '좌파 포퓰리즘' 연정에 종말을 고하겠다고 공개 선언했으나, 이를 실행에 옮길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정계에서는 뿌리깊은 반난민·이민 정서와 오랜 경제 침체에 대한 좌절감 등을 정치적으로 활용해 동맹을 전국 지지율 1위로 올려놓고 차기 대권까지 노리던 살비니의 기세도 한풀 꺾일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작년 8월 오성운동과의 연정을 파기하며 오성운동-민주당 간 새 연정 출범의 다리를 놓은 실수를 범한 살비니로선 개인적으로 두 번째 굴욕이자, 최근 각종 선거에서의 첫 패배로 기록됐다.
살비니는 패배가 확정된 뒤 취재진에 "(선거 승리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앞으로 며칠간 낚시를 하면서 시간을 보낼 것"이라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정계 일각에선 민주당 승리 배경으로 민주당 집권 기간 낮은 실업률에 탄탄한 산업 기반을 일군 에밀리아-로마냐의 경제적 성공에 더해 주도 볼로냐에서 태동해 전국으로 번진 반극우주의 풀뿌리 시민운동, 이른바 '정어리 운동'을 꼽는 시각도 있다.
지난 선거 대비 급격히 높아진 투표율 역시 정어리 운동의 여파라고 보는 전문가들도 많다.
니콜라 진가레티 민주당 대표도 선거 결과의 윤곽이 나온 직후 "정어리들의 활약에 감사를 표한다"고 말했다.
'반살비니'를 공식화한 이 운동은 작년 11월 14일 1만4천여명이 모인 볼로냐 집회를 시작으로 밀라노·토리노·로마·팔레르모 등 이탈리아 전역으로 확산하며 극우주의에 저항하는 '깨어있는 시민의 각성'을 촉발했다.
에밀리아-로마냐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남부 칼라브리아주 선거에선 우파연합 단일 후보인 전진이탈리아의 졸레 산텔리 상원의원이 55.29%를 득표해 30.14%를 얻는 데 그친 피포 칼리포 현 주지사에 압승했다. 그동안 각종 여론조사에서 우세를 보여온 산텔리 의원의 예상된 승리다.
칼라브리아주에서도 오성운동 후보는 7.35%의 득표율로 참패를 면치 못했다.
우파연합은 만성적인 빈곤과 부정부패, 마피아 범죄 등에 염증을 느낀 주민 정서를 효과적으로 파고들어 손쉽게 승리를 거머쥐었다.
에밀리아-로마냐 지방선거 승리가 연정에 희소식인 건 분명하나 한편으로는 민주당과 오성운동 간 새로운 갈등의 시작 또는 자멸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경계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입지를 넓힌 민주당이 연정 내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더 많은 정책적 권한과 지분을 요구할 경우 오성운동의 반감을 사 오히려 연정 붕괴를 재촉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이번 선거를 통해 2018년 총선 득표율 33%의 제1 정당에서 10% 미만의 소수 정당으로 전락했다는 점이 명백해진 오성운동에서 내분이 격화하며 탈당 도미노가 현실화할 경우 민주당의 의지와 관계없이 조기 총선이 앞당겨질 수도 있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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