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오전 7시 기자회견…새벽부터 기자들 줄 서서 입장
"투명한 소통·알 권리 보장" vs "여론 독점·언론 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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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 6시 30분,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 도심의 대통령궁 기자회견장은 이미 3분의 2쯤 차 있었다.
일찌감치 맨 앞줄에 자리 잡은 기자들은 5시 30분께부터 건물 밖에 줄을 섰다고 했다. 일교차가 큰 날씨 탓에 새벽부터 집을 나선 기자들은 두꺼운 외투를 입고 있었고, 급히 나왔는지 젖은 머리로 앉아있는 기자도 있었다.
지난 2018년 12월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66) 멕시코 대통령 취임 이후부터 매일 아침 반복되는 풍경이다.
이름 약자를 따서 'AMLO'(암로)로 불리는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취임 후 1년 넘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평일 오전 7시에 빠짐없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그야말로 파격적인 소통 행보다.
그날그날 주요 이슈에 대해 브리핑하고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다.
대통령이 매일 아침 기자들 앞에 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데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국민과 소통하고 알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지금까지 충실히 지켰다.
각본은 없다. 사전에 기자회견의 주요 이슈를 정해 공지하기도 하지만 질의응답 과정에서 다른 주제로 넘어가는 일이 흔하다.
200여 명의 취재진이 참석한 28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은 '보건'이 주제였다. 대통령과 함께 보건부 장·차관과 국장들이 배석해 의료보험 등과 관련해 브리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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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핑이 채 끝나기도 전에 기자들은 번쩍 손을 들어 질문 기회를 요청했다. "이쪽이요" "여기 뒤에도요" 하는 외침과 함께 자리에서 엉덩이까지 들썩이며 지목을 받으려 애썼다.
보건부 관계자들이 나온 자리였으니 질문은 자연스럽게 요즘 최대 관심사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우한 폐렴'으로 넘어갔다.
멕시코엔 아직 확진자가 없지만 기자들은 확진자가 나오면 대처할 능력은 있는지, 우한에 머무는 멕시코인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물었다.
배석했던 우고 로페스가텔 복지차관은 질문을 예상한 듯 준비한 도표와 함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현황과 정부의 조치 등을 설명했다.
그는 "바이러스가 멕시코에 도달하겠지만 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으니 패닉에 빠질 필요는 없다"며 과한 방심과 지나친 불안을 모두 경계했다.
기자회견 분위기는 대체로 자유롭고 화기애애했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매각을 약속했지만 아직 팔지 못한 대통령 전용기 이야기도 갑자기 꺼냈다.
며칠 전 기자회견 자리에서 복권을 팔아 전용기 금액을 충당하겠다는 '깜짝 아이디어'를 제시했던 대통령은 이날 아예 복권 샘플 디자인까지 공개하며 이 아이디어에 무게를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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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한 질의응답이 이어졌고, 마음이 급한 기자들이 마이크 없이 육성으로 질문을 쏟아내기도 할 때쯤 대통령이 웃으며 "내일 만나자"는 말로 회견을 마무리했다.
7시 조금 지나 시작한 기자회견이 두 시간을 훌쩍 넘긴 때였다.
'아침'이라는 뜻의 '마냐나'에서 파생해 '마냐네라'로 불리는 대통령의 정례 기자회견은 멕시코 주요 보도채널과 유튜브를 통해서도 생중계된다.
이날 대통령실 공식 유튜브 채널이 중계한 영상은 30만 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몇 시간 후엔 대통령실 블로그에 전체 녹취록도 올라온다.
주요 정책 발표가 이 자리에서 이뤄질 때가 많고 그때그때 주요 이슈를 망라하기 때문에 공무원과 기업체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매일 회견을 지켜본다. 덕분에 많은 이들의 아침이 빨라졌다.
이전 어떤 대통령도 하지 않았던 대통령의 '주5일 기자회견'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지지자들은 투명한 정부를 표방하는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적극적인 소통과 알 권리 보장 노력을 호평하고, 반대론자들은 대통령이 여론을 독점하고 언론을 장악하려 한다고 비판한다.
회견이 진행되는 도중 유튜브에선 많은 네티즌이 적극적으로 채팅에 참여하는데 주로 대통령 지지자들의 메시지가 많았다.
대통령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표현하기도 하고, 기자가 앉은 채로 질문하기라도 하면 "일어서라"고 꾸짖는 메시지도 나온다. 공격적인 질문을 한 기자에게 악플이 쏟아지는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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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시티에 사는 한 교민은 "대통령이 매일 거리낌 없이 공개적으로 질문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게 느껴진다"며 "숨기는 것이 많다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멕시코 매체 아니말폴리티코의 안드레아 베가 발레리오 기자는 대통령의 소통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대통령은 원치 않는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맨 앞에 앉아 주로 질문 기회를 얻는 기자들은 대부분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성향"이라고 지적했다.
평소 대통령에 비판적인 교사 베레니세 에르난데스(39)는 "내가 보기엔 시간 낭비"라며 "대통령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한다. 불편한 질문이 나오면 '사실관계를 확인하겠다'라거나 '내가 아는 사실과 다르다'고 회피한다"고 꼬집었다.
각본 없는 기자회견이다 보니 이해 관계자가 기자를 통해 특정 이슈를 거론하면서 대통령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여러 논란 속에서도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여전히 70% 안팎의 지지율을 구가하고 있고, 지지자들을 등에 업은 채 웃는 얼굴로 매일 기자들을 만난다.
주말엔 주로 지방 순방을 다니는 그는 금요일부터 '가짜 뉴스'가 퍼지는 경향이 있다며, 주말에도 아침 기자회견을 여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지난 27일 말했다.
이제 멕시코의 주말도 대통령과 함께 시작할지도 모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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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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