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정권, 신종코로나 우려에 편승해 '개헌 멍석' 깔기

입력 2020-02-01 13:00  

아베 정권, 신종코로나 우려에 편승해 '개헌 멍석' 깔기
감염 확산 막으려면 긴급사태 조항 필요하다고 주장
야당 "인권 문제를 헌법 개정에 악용한다" 반발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코로나) 확산을 헌법 개정의 지렛대로 삼으려는 움직임이 일본 집권당에서 나타나고 있다.
바이러스 확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긴급사태 규정을 신설하자고 목소리를 높인 것인데, 여기에는 전쟁 포기·전력(戰力)보유 금지를 규정한 헌법 9조를 개정하려면 명목이 무엇이든 개헌의 물꼬를 터야 한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1일 아사히(朝日)신문과 교도통신 등의 보도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 감염자들의 강제입원·취업제한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도록 일본 정부가 신종코로나를 '지정 감염증'으로 규정하는 결정을 한 것을 계기로 개헌 관련 발언이 이어졌다.
일본 정부는 애초에는 지정 감염증의 효력이 발휘할 때까지 열흘의 예고 기간(주지 기간)을 뒀는데 그사이에 바이러스가 확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하게 하려면 개헌으로 긴급사태 조항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집권 자민당을 중심으로 대두한 것이다.
방위상을 지낸 나카타니 겐(中谷元) 자민당 중의원 의원은 지난달 29일 파벌 의원 모임에서 "법을 지키다가 죽으면 이자는커녕 원금까지 까먹는다. 비상사태나 긴급사태의 경우 검사·격리·감시·구속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민당이 앞서 내놓은 개헌안에 있는 긴급사태 조항을 거론하며 "법률로 대응할 수 있으면 가장 좋지만 불가능하다면 개헌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은 자민당 개헌안에 포함된 긴급사태 조항을 적용할만한 사례이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개헌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자민당 헌법개정추진본부가 2018년 3월 내놓은 개헌안을 보면 지진 등 대규모 재해가 발생해 국회의 입법 절차를 거칠 여유가 없는 경우 내각이 법률과 사실상 비슷한 효력을 가진 '정령'(政令)을 제정할 수 있도록 하는 긴급사태 조항이 포함돼 있다.
2012년에 자민당이 내놓은 개헌 초안에는 긴급사태가 선언되는 경우 누구든지 신체, 재산을 지키기 위한 조치와 관련해 발령되는 국가나 공공 기관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이부키 분메이(伊吹文明) 전 중의원 의장도 지난달 30일 자민당 회의에서 "주지 기간을 두지 않아도 되도록 하려면 헌법을 바꿔야 한다"며 신종코로나가 "헌법 개정을 위한 하나의 큰 시험대다. 긴급 사태 사례의 하나"라고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일부 야당 의원도 개헌 논의를 부채질했다.
바바 노부유키(馬場伸幸) 일본 유신회 간사장은 "감염 확대는 매우 좋은 본보기가 된다"며 지난달 28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아베 총리의 견해를 물었다.
아베 총리는 "거대 지진이나 쓰나미(지진 해일) 등에 신속하게 대처하는 관점에서 개헌에서 긴급사태를 어떻게 위치 지을 것인지는 충분히 논의해야 할 일"이라고 반응했다.
주요 야당은 반발했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대표는 지난달 31일 기자회견에서 "감염 확대 방지에 필요하다면 온갖 조치를 현행법제로 할 수 있다. 헌법과는 전혀 관계없다"며 "인권에 관한 문제를 헌법 개정에 악용하려고 하는 자세는 용납할 수 없다"고 신종코로나 사태를 개헌논의와 연결 짓는 시도를 비판했다.
다마키 유이치로(玉木雄一郞) 국민민주당 대표는 "갑자기 헌법 개정 이야기로 가져가는 것은 좀 지나친 일이다"고 견제했으며 다무라 도모코(田村智子) 일본공산당 정책위원장은 "위기감을 이용했다. 심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자민당의 개헌 구상에 반영된 긴급사태 조항은 위기를 명분으로 국민의 기본권이나 의회의 견제 기능을 대폭 제약한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일단 개헌 논의가 물살을 타면 이른바 평화 헌법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자민당 개헌안에는 긴급사태 조항 외에도 자위대의 존재를 반영하도록 헌법 9조를 개정하는 내용까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주지 기간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자 신종코로나를 지정 감염증으로 정한 결정의 효력이 발휘되는 시점을 엿새 앞당겼다.
sewonl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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