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시리아 무력충돌…시험대 오른 러·터키 관계

입력 2020-02-04 19:59  

터키·시리아 무력충돌…시험대 오른 러·터키 관계
시리아 정부군 공격으로 터키군 병사 사망…터키 보복공격 나서
에르도안, 러시아 향해 "길 막지 말고 비켜 서 있으라"
2016년 터키 쿠데타 이후 러시아·터키 급속 밀착
최근 리비아·시리아서 입장차 보이며 균열 양상




(이스탄불=연합뉴스) 김승욱 특파원 = 시리아 북서부에서 터키군과 시리아 정부군의 무력충돌이 빚어지면서 순항하던 러시아·터키 관계가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터키는 2011년 시리아에서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철권통치에 반발해 반군이 봉기하자 이를 지원했으나, 러시아는 2015년부터 시리아 내전에 개입해 정부군을 지원했다.
러시아는 시리아 공군기지에 자국 전투기를 주둔시키고 반군을 공습하며 정부군을 지원했고, 한때 실각 직전까지 몰렸던 알아사드 대통령은 러시아의 도움으로 전세를 역전하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정부군이 터키 접경인 북서부 이들립 주(州)까지 반군을 밀어붙이면서 반군을 지원하던 터키군과 직접 충돌하는 상황이 빚어진 것이다.
지난 3일(현지시간) 시리아 정부군의 포격에 터키군 병사 5명이 숨지자 터키군은 F-16 전투기까지 동원해 보복 공격에 나섰다.
훌루시 아카르 터키 국방부 장관은 "이들립 지역의 54개 목표물에 보복 공격을 가했으며, 시리아군 병사 76명을 무력화했다"고 밝혔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알아사드 정권은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며 배후에 있는 러시아를 향해 "길을 막지 말고 비켜서 있으라"고 경고했다.
최근 서방 국가들의 우려를 자아낼 정도로 가까워진 러시아·터키 관계에 알아사드 정권에 대한 입장 차이로 균열이 가는 모양새다.



냉전 시절 소련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결성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인 터키는 최근 급속한 친(親)러시아 행보를 보여왔다.
양국 관계가 가까워진 결정적인 계기는 2016년 터키 군부의 쿠데타 시도였다.
쿠데타 시도 전만 해도 터키와 러시아 관계는 2015년 11월 발생한 터키 공군의 러시아 전폭기 격추 사건으로 역대 최악인 상황이었다.
그러나 쿠데타가 발생하자 에르도안 대통령은 당시 러시아 전폭기를 격추한 조종사 2명을 쿠데타 연루 혐의로 체포했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터키 정부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마침 미국이 터키가 요구한 패트리엇 지대공 미사일 판매를 거부하자 터키는 러시아제 S-400 방공 미사일로 눈을 돌렸고, 러시아는 선뜻 터키의 요구에 응했다.
나토 회원국은 러시아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깨고 터키가 S-400 도입을 결정하자 미국을 비롯한 나토 회원국들은 경악했다.
특히, 미국은 터키가 S-400을 도입할 경우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인 F-35의 기밀 정보가 러시아에 유출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F-35 판매 금지 카드까지 꺼내 들며 터키를 압박했지만 터키는 S-400 도입 결정을 철회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터키가 시리아 북동부를 장악한 쿠르드족을 몰아내려 시리아 국경을 넘어 군사작전을 개시하자 양국 관계는 더욱 공고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철군 명령으로 시리아 주둔 미군이 시리아 북동부에서 철수하자 터키군은 압도적인 화력으로 쿠르드족을 몰아붙였고, 미국이 아닌 러시아가 터키와 쿠르드 세력을 중재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터키와 러시아는 시리아 북동부를 공동순찰하는 등 '찰떡공조'를 과시했다.



그러나 시리아 북동부 쿠르드족과의 전투 이후 양국 관계에 파열음이 들려왔다. 발단은 터키의 리비아 파병이었다.
리비아는 2011년 아랍의 봄 민중봉기의 여파로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무너진 후 2014년부터 서부를 통제하는 리비아 통합정부(GNA)와 동부를 장악한 군벌세력인 리비아국민군(LNA)으로 양분돼 내전을 벌여왔다.
동부 유전지대를 장악하고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이집트·러시아 등의 지원을 받는 LNA가 GNA의 수도 트리폴리를 향해 진격을 개시하자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GNA는 급히 터키와 군사안보협약을 체결했다.
터키는 이에 따라 지난달 초 GNA를 돕기 위해 리비아에 병력을 파견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당시 LNA를 돕는 러시아를 언급하며 "리비아에는 러시아 용병 2천500명이 있는 데도 이를 지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비판했다.
이후 시리아 북서부에서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정부군과 터키군이 직접 충돌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터키 내에서 러시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터키 관영 아나돌루 통신은 최근 러시아 전투기의 공습으로 시리아 북서부에서 민간인이 숨진 사례를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과거 터키 언론은 시리아 정부군의 공격으로 민간인이 숨진 사건은 적극적으로 전했지만, 러시아의 공습으로 민간인이 숨진 경우 대부분 보도하지 않았다.
에르도안 대통령도 지난달 29일 "러시아가 시리아에서 휴전 합의를 지키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가 휴전 합의를 위반한 대상으로 러시아를 거론한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그는 터키군이 시리아에 보복 공격을 가한 직후 "우리 상대는 러시아가 아닌 시리아 정권"이라면서도 "러시아는 터키의 길을 막지 말고 비켜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터키의 유력 싱크탱크인 정치경제사회연구재단(SETA)의 무라트 예실타스 안보정책국장은 터키 NTV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여전히 러시아 관계에 큰 중점을 두고 있다"면서도 "현재 터키·러시아 관계는 심각한 테스트를 거치는 중"이라고 평가했다.


kind3@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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