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립-냉담, 갈라진 국정연설…트럼프, 치적 자랑 재선 행보 가속(종합)

입력 2020-02-05 15:42   수정 2020-02-05 18:41

기립-냉담, 갈라진 국정연설…트럼프, 치적 자랑 재선 행보 가속(종합)
'탄핵 면죄부' 하루 앞두고 연설…탄핵 한마디도 언급 안 해
트럼프, 펠로시 악수 외면…펠로시는 트럼프 연설 끝나자 원고 찢어
트럼프 자화자찬에 공화당 환호·박수·기립…민주당, 싸늘한 반응



(뉴욕=연합뉴스) 이귀원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하원 의사당에서 열린 상·하원 합동의회 형식의 국정 연설을 통해 자신의 치적을 한껏 내세우며 재선 행보를 가속했다.
이날 국정연설은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관련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상원의 탄핵 유·무죄 최종 표결을 하루 앞둔 상황에서 이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의 탄핵 표결에서 탄핵 혐의에 대해 무죄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를 의식한 듯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감을 드러내며 거침없는 연설을 이어갔다.
그는 약 80분간의 국정연설에서 '탄핵'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 초반부터 일자리 창출과 낮은 실업률, 미국 증시의 지속적인 상승세, 중국과의 무역 합의 등을 자신의 경제적 치적으로 내세우며 경제 부문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3년 전 우리는 '위대한 미국의 귀환'(great American comeback)'에 착수했다"면서 "오늘 저녁 나는 놀랄만한 결과를 공유하기 위해 여러분 앞에 섰다"고 밝혔다. 이어 "일자리 붐이 일어나고, 소득은 급증하고, 빈곤은 급감하고 있다. 범죄율은 떨어지고, 자신감은 커지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번영하고 다시 크게 존경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탄핵 심판을 주도하고 있는 민주당 의원 사이에는 차가운 기운이 흘렀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을 위해 연단에 오르면서 하원에서 탄핵 가결을 주도한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의 눈길을 애써 외면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연설 원고를 받은 펠로시 의장이 악수를 위해 손을 내밀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못 본 척 외면하며 돌아섰다.
하원에서 탄핵 가결을 주도한 애덤 시프 하원 정보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당 소속 탄핵소추위원들은 민주당 의원석 제일 앞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을 청취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경제적 치적을 내세우고, 불법 이민 단속, 국경장벽 등 논란이 있는 이슈들에 관해 얘기할 때는 공화당과 민주당 의원들의 반응은 확연히 달랐다.
공화당 의원들은 수시로 일제히 기립해 때론 함성과 함께 박수로 화답했다. 공화당 의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연설을 시작하기 직전 "4년 더"를 외치기도 했다. 오는 11월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기를 응원한 것으로, 유세 현장을 방불케 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민주당 의원들은 자리에 앉은 채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휴대전화를 보며 외면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민의) 단합이 어느 때보다 강하다"고 언급하자 일부 의원들은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을 겨냥한 듯 "이 회의장에 있는 130명이 넘는 의원들은 수백만 명의 불법 이민자들에게 건강보험을 제공해 우리나라를 파산시킬 법안을 지지했다"면서 "우리는 결코 사회주의가 미국의 건강보험을 파괴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 뒤편의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펠로시 하원 의장도 연설 시작 전부터 거의 말을 섞지 않았으며, 서로 눈길도 제대로 교환하지 않았다고 미국 언론이 전했다.
펠로시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이 끝나자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연설원고를 찢어 책상에 던졌고, 트럼프 대통령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연단을 내려왔다.
지난해 국정연설 당시에도 민주당 의원들은 박수보다 냉담 쪽의 반응을 보였지만 이날의 냉담은 더 차가웠다.
공화당 의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에 더욱 열광적으로 환호했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 간의 불화가 국정연설장에서 끓어 올랐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펠로시 의장이 내민 손을 거절했고, 펠로시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이 끝난 뒤 연설문을 찢어버렸다고 전했다.
AP통신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뉴욕) 의원 등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사전에 국정연설 불참을 선언했다고 전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논란이 없는 이슈에 대해 대통령이 언급할 때는 앉아서 박수로 호응했다.
특히 펠로시 하원 의장을 비롯해 상당수가 민주당 의원들로 보이는 여성의원들은 지난해 국정연설 때와 마찬가지로 흰색 의상을 입고 참석했다. 흰색은 20세기 초 영국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을 벌인 여성들인 서프러제트'(suffragette)를 상징하는 색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자신이 초청한 인사들을 일으켜 세워 치하하는 한편, 자신의 메시지를 발신하는 데 활용했다.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을 자처하는 야권 지도자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 국정연설 자리에 '깜짝 손님'으로 참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베네수엘라 국민의 희망과 꿈, 포부를 지닌 사람이 오늘 저녁 여기에 있다. 베네수엘라의 진정한 합법적 대통령, 후안 과이도가 함께 했다"고 소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캘리포니아에서 체포됐다 풀려난 불법 이민자에 의해 살해된 희생자 가운데 한 명인 로키 존스의 형제 조디를 일으켜 세워 "우리는 당신이 정의를 가질 때까지 쉬지 않을 것"이라며 불법 이민 문제를 부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21주 6일 만에 태어나 생존한 2세 소녀(엘리 슈나이더)를 품에 안은 엄마 로빈을 일으켜 세워 축하의 말을 전한 뒤 "내가 오늘 밤 의회에 후기낙태(late-term abortion)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킬 것을 촉구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자신의 암 진단을 공개한 보수적 라디오 진행자 러쉬 림보우에게 미국 민간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훈장 '자유의 메달'을 수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부인인 멜라니아 여사가 국정연설 현장에서 림보우에게 메달을 걸어줬다.
lkw777@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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