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 외교' 기조 맞물려 상황관리 포석…북 자극 피하며 '전략적 무시'?
진전없는 상황서 언급 부담됐을수도…중동 등 시급한 현안에 후순위 관측도
(워싱턴=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4일(현지시간) 밤 국정연설에는 '북한'이 등장하지 않았다.
국정연설은 트럼프 대통령이 연초 한해의 분야별 국정운영 청사진을 밝히는 자리로, 올해로 세 번째를 맞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정연설에서 북한을 거론하지 않은 것은 올해가 처음이어서 그 배경을 놓고 관심이 쏠렸다.
북한이 지난 연말 경고한 '크리스마스 선물'은 현실화하지 않았지만 새로운 전략무기와 '충격적 실제 행동' 예고로 북미 간 교착·경색 국면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이란과 IS(이슬람 국가), 이스라엘 및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 등 중동, 베네수엘라, 쿠바 등 대외 현안들을 언급했지만, 북한 문제는 비껴갔다.
지난해 9월 유엔총회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에 대한 대담한 외교'를 천명하며 북한의 비핵화를 거듭 촉구한 뒤 "전 세계에 대한 나의 메시지는 분명하다"면서 "미국의 목표는 항구적이다. 미국의 목표는 화합이며 미국의 목표는 절대 끝나지 않는, 끝없는 전쟁을 이어가지 않는 것"이라는 말로 이어간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국정연설에서도 중동 내 미국의 전쟁 종식을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지만, 북한은 따로 언급하지 않고 지나갔다.
북한 문제가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공을 들여온 대표적 외교 분야라는 점에서 짧게라도 어떤 식으로든 거론하고 지나가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제기된 상태였지만 언급은 없었다.
국정연설에서 북한 문제가 어떤 식으로 다뤄졌는지는 그 무렵의 북미 관계와도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국정연설에서 북한에 대해 말을 아낀 것은 대선 국면에서 대북 상황관리에 주력하고 있는 흐름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가 최근 '인내하는 외교'를 강조하며 "서두르지 않겠다"는 속도조절론을 다시 꺼내든 연장 선상에서다.
이는 외교를 통한 대북 문제 해결이라는 기본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실질적인 속도를 내기보다는 대선 길목에서 북한의 추가 도발 억지 등 탈선 방지와 협상 틀 유지에 방점을 둠으로써 '대북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기류와 맞닿아 있어 보인다. 불필요한 자극은 피하겠다는 포석이 깔려 있다는 분석인 셈이다.
이와 맞물려 일각에서는 '전략적 무시' 차원이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대북 문제를 외교 분야의 최고 치적으로 내세워온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북한 관련 가시적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국정연설장에서 꺼내는 게 대선 국면에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북한 문제가 이란을 비롯한 중동 문제 등 화급한 현안에 가려져 대선 국면에서 우선순위에서 상대적으로 '뒷전'으로 밀린 게 아니냐는 시선도 고개를 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관련 언급을 한 것은 미·중 1단계 무역 합의 서명식이 있던 지난달 15일 북한 문제에 있어 중국과 아주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며 '체스 게임' 비유를 들었던 것이 마지막이다.
그러나 백악관은 이날 국정연설과 관련해 배포한 분야별 설명자료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의 군을 재건하고 해외에서 미국의 국익을 보호하고 있다"며 '평화 추구' 항목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끝없는 전쟁에 종지부를 찍고 이 세계를 모두를 위해 더욱더 평화롭고 번영한 장소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반도에서부터 중동, 발칸에 이르기까지 트럼프 행정부는 평화의 확산을 추구하고 있다"며 한반도에 대한 평화 추구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가 해빙무드로 본격 전환하기 직전인 지난 2018년 1월 30일 국정연설에서 "북한의 무모한 핵무기 추구가 우리의 본토를 곧 위협할 수 있다"면서 '최고의 압박 작전' 기조를 재확인했다.
그는 북한에 억류됐다가 풀려나자마자 사망한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와 탈북자 지성호 씨의 사례를 거론하면서 북한 정권의 '잔학성'도 강하게 비판하며 인권 문제도 정면으로 거론했다. 지씨를 특별 게스트 중 한명으로 깜짝 초청하기도 했다.
6·12 1차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거쳐 2차 베트남 하노이 정상회담 목전에서 진행된 지난해 국정연설에서는 북한에 대한 톤이 확 바뀌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2월 27∼28일 베트남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날 것이라고 공식 발표하며 김 위원장과의 좋은 관계를 들어 '대담하고 새로운 외교',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역사적 노력'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플로리다에서 했던 재선 출정식 때에도 미·중 간 무역협정을 비롯, 이스라엘과 이란, 베네수엘라, 쿠바 등 국제 현안들을 잠시 열거하면서 북한은 거론하지 않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을 앞두고 예민한 국면에서 말을 아낌으로써 상황관리에 나선 게 아니냐는 관측을 불러일으켰었다.
hanks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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