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中격리생활기] ④ 14일만에 만난 세상은 '격리도시'로

입력 2020-02-05 21:36   수정 2020-02-05 21:40

[특파원 中격리생활기] ④ 14일만에 만난 세상은 '격리도시'로
놀랍도록 바뀐 상하이 거리…엘리베이터 단추들 비닐로 덮어놓아
마스크 쓰고 장갑 낀 채 장 보는 손님, 보호 안경 쓴 계산원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오늘은 기다리던 '출소일'입니다.
우한(武漢) 취재를 떠났다가 지난달 22일 상하이(上海)로 돌아왔으니 이날로 꼭 14일이 흘렀습니다.
아침 8시가 조금 넘은 시각, 방호복에 고글을 쓴 사람이 제 방 앞에 찾아옵니다. 자기 앞에서 체온을 재 보여달라고 합니다.
마지막 시험입니다. 체온이 조금이라도 높으면 여기 '집중 관찰 시설'에 더 남아야 할 겁니다.
체온계를 귀에 꽂고 결과가 나왔음을 알리는 '삐' 소리가 날 때까지 흐르는 2∼3초. 마치 초고속 카메라가 찍은 화면처럼 아주 천천히 지나갑니다.
체온계가 가리킨 숫자는 정상 범위인 36.4도.
저는 여행 가방을 끌면서 방호복을 입은 사람을 따라 복도 끝 비상계단 입구로 향합니다. 세상으로 다시 연결되는 출구입니다.
방호복을 입은 사람은 비상구 문을 열고 저에게 손을 내밀라고 합니다. 손 소독제를 뿌려 줍니다. '안의 세상'에서 '바깥 세상'으로 나가는 데 치르는 의식처럼 느껴집니다.
그는 그러고는 '상하이 위생서비스 센터' 명의로 된 둥근 공공기관 도장이 찍힌 '건강 관찰 해제 통지서' 한 장을 제게 건넵니다.
그는 "밖에 나가도 감염 위험이 늘 있으니 항상 건강에 유의하세요"라고 당부를 합니다.
저도 궁금해집니다. 과연 지금 나오는 이 건물 안과 바깥 중 어느 곳이 더 안전한지 말입니다.
이날 오후 5시를 기준으로 중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 환자는 벌써 2만4천413명. 이 중 492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제가 있는 상하이시에서도 확진 환자 243명이 나왔습니다.
2주 만에 자유롭게 걷는 상하이의 거리 풍경은 다른 '평행 세계'에 온 것처럼 부쩍 달라져 있습니다.
오전 9시가 다 됐는데도 이른 새벽처럼 넓은 도로는 한산합니다. 새벽처럼 주변의 나무에서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가 크게 울려 퍼져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 분위기도 크게 바뀌었습니다.
짐을 잔뜩 들고 들어가려 하자 경비원들이 길을 막아 세웁니다. 얼굴을 알지만 어디서 왔는지 항공권 같은 증빙 자료를 내놓아야 들어갈 수 있다는 겁니다.
아침에 받은 '관찰 해제 통지서'를 보여주자 그제야 대문을 열어 줍니다.
아파트 정문 앞에는 '반(半) 봉쇄식 관리'에 들어간다는 공고가 붙어 있습니다. 정문 앞에는 안에 들어오지 못한 택배 기사들이 놓은 물건들이 잔뜩 쌓여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엘리베이터 버튼들 위에는 비닐이 씌워 있습니다. 그다지 과학적인 것 같지는 않지만 혹시 모를 손 접촉에 의한 감염을 줄여 보겠다는 생각에서 이렇게 한 듯합니다.
얼른 몸부터 씻고 격리 시설에서 쓰다 가져온 모든 물건을 펼쳐놓고 하나씩 소독제를 묻혀 닦아봅니다. 입었던 옷들을 빨고, 좀 낡았다 싶은 것들은 그냥 내다 버립니다.
집에 먹을 것이 있어야 하니 장을 보러 잠시 나갔습니다. 집 근처에서 걸어갈 수 있는 가게들은 모조리 문을 닫았길래 가장 가까운 백화점 지하 슈퍼마켓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백화점 문을 열었지만 1층엔 손님보다 지키는 직원들이 더 많아 보입니다. 입구마다 선 경비원들은 손에 체온계를 들고 들어오는 손님의 체온을 잽니다.
지하 1층 슈퍼마켓에서는 그나마 먹을 것을 사러 오는 손님이 조금 눈에 띕니다.
마스크는 기본. 맨손으로 만지기 찝찝했는지 일회용 장갑을 끼고 카트를 미는 손님들이 자주 보입니다.
계산대의 직원 역시 마스크도 모자라 눈 보호용 안경까지 쓰고 있습니다.

평소에 사람들로 넘쳤던 거리가 한산해진 지금, 2천만 상하이의 시민들은 대부분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14억 중국인들 중 상당수가 마찬가지일 겁니다.
후베이성을 벗어나 이제 항저우(杭州) 등 많은 동부 연안 도시들까지 주민들의 외출을 금지하고 이틀에 한 번, 한 명만 먹을 것을 사러 밖에 나가는 것을 허용할 정도로 상황은 악화일로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 속에서 중국 전역이 거대한 '격리 도시'로 바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비극적인 병의 확산 속에서 많은 이들의 생사와 운명이 엇갈립니다.
이 새로운 바이러스는 국경이라는 인간이 정해 놓은 벽을 넘어 한국으로, 일본으로, 태국으로, 미국으로, 유럽으로 퍼져 인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중국을 강타한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사태가 앞으로 미국을 넘어서는 세계 최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야심 찬 꿈을 꾸는 중국의 앞날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도 지켜볼 일입니다.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의 추이에 우리가 큰 관심을 둘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제 '격리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몇 편이 이어지는 동안 많은 독자분들로부터 과분한 격려를 받았습니다. 크게 위로받고 많은 용기를 얻었습니다. '격리기'는 이제 끝나지만 중국에서 보고, 듣고, 생각하고, 쓰는 저의 일은 언제나처럼 계속됩니다.
마지막으로 제 회사 얘기로 끝을 맺을까 합니다.
연합뉴스는 '국가기간뉴스통신사'입니다. 뉴스통신사라는 언론사 역할에다 공익을 위해 꼭 필요하지만 개별 언론사가 하기 어려운 공적 기능을 더 하면서 나랏돈을 일부 받는 대신 그 책임을 무겁게 져야 하는 언론사라는 것이지요.
저도 보통의 사람인지라 굳이 위험할 것 같은(솔직히 그때는 이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지만) 우한에 들어가겠다고 먼저 손을 들 필요가 있나 고민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겁니다.
하지만 나중에 행여 '연합뉴스가 그때 뭐했나'라는 소리만은 듣고 싶지는 않았다는 게 차라리 제 솔직한 심정이었을 겁니다.
독자들께서 보시기에 부족함이 너무나 많겠습니다만 이 자리를 빌려 그래도 많은 연합뉴스 기자들이 이 책임을 잊지 않고 살아가려 애쓰고 있다는 점을 한 번 말씀드려보고 싶었습니다.

ch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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