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 48구 중 21구는 어린이…대도시 아닌 교외 조성된 드문 사례
연구진 "흑사병 창궐에 교외로 내몰린 것…중세 병원은 종교적 역할도"
(서울=연합뉴스) 김서영 기자 = 14세기 유럽 전역을 뒤덮어 2억명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의 흔적이 영국의 한 공동묘지에서 새롭게 발견됐다.
영국 셰필드대학 연구진에 따르면 동부 링컨셔 지역의 손턴 수도원 부지에서 흑사병으로 사망한 이들의 유골 48구가 무더기로 발굴됐다고 CNN방송이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가운데 21구는 어린이 유골로 파악됐다.
당시 영국에서는 2년도 되지 않는 기간에 인구 절반이 흑사병으로 죽었다.
이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봉쇄된 채 사망자가 속출하는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상황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19일(베이징 현지시간)까지 후베이성에서만 바이러스 감염 사망자가 1천900여명에 이르고, 확산 기세가 한풀 꺾였다는 최근 며칠 새에도 하루 100여명이 사망했다.
우한이 봉쇄된 것과 비슷하게 이번에 발굴된 사망자들은 흑사병이 창궐한 도시·병원에서 강제로 교외의 손턴 수도원으로 격리돼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보인다고 연구진은 추정했다.
16구의 유골에서 회수한 치아로 유전자 분석을 한 결과, 런던 지역에서 발병했던 것과 같은 계통의 흑사병 병원체가 발견됐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연구진은 "영국에 남은 중세 후기의 흑사병 공동묘지는 아주 드물다"면서 "(손턴 수도원 묘지는) 외딴 시골 지역에 있으며, 수도회와 관련 있다는 점에서 다른 14세기 묘지와 구별된다"고 강조했다.
중세 대도시에 형성된 대규모 공동묘지도 흑사병의 엄청난 피해 규모를 보여주지만, 이러한 '집단 무덤'이 교외 시골 지역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집단 무덤이 수도원 부지에서 발견된 데 대해 연구진은 "중세의 병원이 순례자와 환자를 돕고, 가난한 이들에게 구호품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종교 기관이었다"고 설명했다.
연구에 따르면 발견된 유해 48구는 며칠 동안 매장이 이뤄졌다.
장지를 조성한 손턴 수도원 산하 '병원'은 조심스럽게 사망자 한명 한명을 수의로 감싼 뒤 유해가 서로 겹치지 않도록 매장했다.
이들의 사망 당시 나이는 1∼45세로, 다수가 17세 미만의 아동으로 나타났다.
12개월 미만 영아의 유해는 발견되지 않았는데, 유골 자체가 성인보다 연약해 현재까지 보존되지 않았으리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연구진은 유해가 발굴된 묘지가 일정 시점에 훼손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조성 당시 묘지의 규모는 지금보다 더 크고, 많은 수의 희생자들이 매장돼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번 연구는 고고학 학술지 앤티쿼티(Antiquity) 최근호에 실렸다.
sy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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