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통역' 샤론 최 "무대울렁증, 10초 명상으로 극복"

입력 2020-02-19 14:41   수정 2020-02-19 14:44

'봉준호 통역' 샤론 최 "무대울렁증, 10초 명상으로 극복"
미국 연예매체 기고…"영화감독으로 내 목소리 내기 위해 배우고 있다"
"통역때 방광이 1시간 버텨주기를 기도"…"2월9일 기생충의 날로 정해도 놀라지 않아"
"봉 감독과 여행은 특권"…"외로움 덜 느끼기 위해 이야기꾼 되고 싶어"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정윤섭 특파원 = 봉준호 감독의 각종 수상 소감을 완벽하게 통역해 화제를 모은 최성재(샤론 최) 씨가 아카데미상 무대에 오르기까지 10개월에 걸친 여정을 직접 소개했다.
최 씨는 18일(현지시간) 미국 연예매체 '버라이어티'에 기고한 수기 형식의 글을 통해 '봉준호의 입'으로 활약하며 느꼈던 경험과 소회, 영화감독 지망생으로서 앞으로의 계획을 털어놓았다.
최 씨는 "지난 6개월은 내 목소리를 유지하기 위해 허니레몬티의 끝없는 주문과 함께 한 시간이었다"며 "이제 앞으로 내가 쓸 각본은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나의 진심과 밀접한 이야기"라고 밝혔다.
그는 "이제 남은 일은 나 자신과 영화 언어 사이를 통역하는 것"이라며 "사고의 유연함이 기생충을 현재의 위치로 이끌었고, 공감을 만들어냈다. 내가 이야기꾼이 되고자 하는 이유는 덜 외로움을 느끼기 위해서"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꿈의 무대 오스카에 서기까지 남다른 고충도 많았다고 밝혔다.
그는 "가면 증후군과 싸웠고, 대중에게 사랑받는 사람의 말을 잘못 전달할 수 있다는 불안감과 싸워야 했다"며 "무대 공포증에 대한 유일한 치유법은 무대 뒤에서 10초간 명상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영화학도로 영화감독 지망생인 그는 "이번 여행은 특권일 뿐이었다. 높이 뛰어오르기 위해 산소탱크가 필요했다"며 "감독으로서 내 목소리를 내기 위해 나는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최 씨는 봉 감독 못지않게 스타덤에 올랐지만, 정말 예기치 않게 '봉준호의 입'이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4월 첫 번째 통역 의뢰는 단편영화 각본 작업 때문에 놓쳤지만, 두 번째 통역 의뢰를 기꺼이 수락하고선 "(통역할 때) 화장실에 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방광이 한 시간가량 버텨주기를 기도했다"며 당시의 벅찬 감정을 회고했다.
그는 봉 감독 통역 일을 하기 전 경력이라곤 이창동 감독과 함께 했던 일주일에 불과했다는 점도 얘기했다.
2018년 10월 이창동 감독의 '버닝'이 북미 시장에 진출했을 때 샤론 최가 통역을 했던 동영상은 지금도 소셜미디어에서 '완벽 통역'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최 씨는 초등학교 시절 미국 로스앤젤레스(LA) 근교에서 2년을 살았고, 미국의 한 대학에서 영화예술 미디어학을 전공했다.
그는 "어린 시절 미국에서 2년을 보내면서 나는 이상한 하이브리드가 됐다"며 "너무 한국인다워서 미국인이 될 수 없었고, 너무 미국인 같아서 한국인이 될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영어 실력을 유지했지만, LA에서 대학을 다닐 때 무심하게 듣는 '왓츠업'(What's up?)이라는 말에도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 씨는 봉 감독의 통역 일이 "모든 장벽을 깨트린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가 됐다"고 묘사했다.
그는 "통역을 할 때 회상에 잠길 시간은 없다"며 "통역은 현재 존재하는 순간에 관한 모든 것이고, 다음 순간을 위해 (이전의) 기억을 지워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불면증을 달래고 동서양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봤던 영화들과 봉 감독의 명확한 달변이 통역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도 했다.
최 씨는 자신의 유명세에 대해선 유쾌한 농담으로 받아넘겼다.
그는 "소셜미디어 피드에서 내 얼굴을 보는 것이 너무 이상했고, 비아그라 광고를 위한 해시태그에 내 이름을 넣은 트윗을 발견하기도 했다"면서 "한국 정부가 2월 9일을 기생충의 날로 선포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jamin7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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