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세탁 방지 정책 노력 부족" 4년 유예 철회
이란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된 결정" 반발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는 21일(현지시간) 파리에서 회의를 열어 지난 4년간 이란에 부여했던 '최고수준 제재'(Counter-measure) 유예를 철회하고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FATF는 이날 낸 보도자료에서 "이란은 FATF의 기준에 따른 팔레르모 협약(조직범죄 방지협약)과 테러자금 조달억제에 대한 유엔 협약을 이행하는 법률 제정에 실패했다"라면서 "최고수준 제재 유예를 완전히 철회한다"라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이란은 북한과 마찬가지로 FATF의 블랙리스트에 오르면서 수준의 최고수준 제재를 받게 됐다.
최고수준 제재 대상국이 되면 FATF 가입국이 이란과 거래를 사실상 중단하고 금융회사의 해외 사무소 설립 금지 등의 제한을 받는다. 또 이란과 금융거래가 더욱 강력한 국제적 감시 아래 놓이고 이란에서 영업하는 금융 회사는 더 엄격한 외부 회계감사를 받을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의 대이란 제재로 외부와 금융 거래가 극히 제한된 이란으로서는 국제 금융망에서 한층 고립될 위험에 처했다.
FATF는 "이란은 반복된 경고에도 테러자금 지원 범죄화, 전신 송금 투명성 제고, 테러조직 자산 동결 등 FATF 기준을 이행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라며 "모든 회원국과 금융 기구는 (이란에 대해) 최고수준 제재를 적용해달라"라고 촉구했다.
아울러 FATF의 이날 결정은 유럽 측이 미국의 일방적 파기로 위기에 처한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탈퇴할 명분이 될 수도 있다.
이란은 핵합의에 따라 유럽 측 핵합의 서명국(영·프·독)에 미국의 제재로 중단한 금융 거래를 재개하라고 압박했지만 이들 서명국은 이란이 FATF를 법제화지 않는다면서 이를 구실로 난색을 보였기 때문이다.
유럽 측은 핵합의를 유지해야 한다고는 하지만 이란과 실물·금융 거래를 거의 하지 않으면서 이를 이행하려는 실질적 조처없이 미온적인 태도다.
이란이 이에 대응해 지난해 5월부터 핵프로그램을 단계별로 재개하면서 핵합의 이행 수준을 감축하자 유럽 측은 핵합의를 무효로 할 수도 있는 분쟁조정절차를 개시하면서 이란과 불화를 빚는 터다.
핵합의를 성사한 이란의 하산 로하니 행정부는 FATF에 가입하고 그 기준을 이행하는 법안을 3년 전부터 의회에 제출했지만 의회 내 관련 상임위, 상원에 해당하는 헌법수호위원회에 번번이 막혔다.
이란 행정부는 수차례 수정안을 회부했지만 결국 법률로 제정되지 못했다.
이란 보수 세력은 FATF에 가입하면 이란의 국영 금융기관과 예산 운용이 이란에 적대적인 서방에 그대로 노출된다면서 이를 강하게 반대했다. 이란이 자금을 지원하는 중동 내 무장정파, 무장조직 대부분을 미국과 유럽이 테러조직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FATF는 2016년 1월 핵합의 이행 뒤 이란 정부가 돈세탁과 테러자금 방지를 위한 법제화 노력을 고려, 지난 4년간 이란에는 최고수준 제재 부과 유예(Enhanced due diligence) 등급을 유지하면서 시한을 연기했다.
이날 FATF의 결정에 압돌나세르 헴마티 이란 중앙은행 총재는 "원칙에 따르지 않고 정치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결정이다"라며 "우리의 외국과 교역과 외환시장 안정성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FATF는 다만 "이란이 팔레르모 협약과 테러자금 조달억제에 대한 유엔 협약을 비준하면 FATF는 최고수준 제재 유예를 포함한 향후 조처를 결정할 것이다"라며 여지를 뒀다.
아울러 북한에 대해서는 여전히 최고수준 제재를 유지했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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