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전 총선과 정반대…1979년 이래 최저 투표율 42.6%
'핵합의 성사' 로하니 정부에 실망 반영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21일(현지시간) 실시된 이란 의회(마즐레스) 의원(총 290명)을 뽑는 총선에서 반미 보수파의 압승이 유력해지는 분위기다.
이란 내무부가 23일 오후 발표한 최종 개표 결과에 따르면 소수 종교에 할당된 5석을 뺀 285석 가운데 보수 성향으로 분류할 수 있는 당선자는 220명 안팎으로 집계됐다.
특히 이란의 민심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수도 테헤란 선거구에 배정된 30석을 모두 강경 보수파 후보가 차지했다.
전국 득표 1위인 후보는 테헤란에서 당선된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전 테헤란 시장으로 나타났다. 갈리바프 전 시장은 혁명수비대 장성 출신으로 대선에도 3번 출마했다. 당선되면 차기 의회 의장이 될 가능성이 큰 인물이다.
2016년 총선에서 중도·개혁파가 수도 테헤란 선거구 30석을 독식한 점을 떠올려 보면 4년 만에 판세가 완전히 뒤바뀐 셈이다.
보수파가 의회를 장악하면 내년 5월 대통령 선거에서도 보수 성향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서방과 핵협상을 통한 경제 발전을 공약하면서 2013년과 2017년 선거에서 승리한 하산 로하니 대통령의 협상을 축으로 하는 온건 정책이 막을 내리게 된다는 뜻이다.
로하니 정부는 2015년 7월 미국·유럽과 역사적인 핵협상을 타결해 서방의 대이란 제재를 완화하는 데 성공했지만 2018년 5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파기하면서 사실상 협상 전으로 회귀하고 말았다.
중도·실용 노선을 내세운 현 정부가 심각한 경제난을 해결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과적으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지지도가 떨어졌고 강경한 반미 보수 세력이 반사이익을 얻게 된 것이다.
이후 이란은 최대 압박 전략을 구사하는 미국에 한 치의 양보없이 정면으로 맞서면서 군사적 대치도 첨예해졌다.
이란에서는 미국과 갈등이 고조할수록 반미 강경파가 결집한다.
선거 업무를 총괄하는 이란 내무부는 23일 이번 총선 투표율이 42.6%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이번 투표율은 현 통치 체제가 수립된 1979년 이래 최저다. 4년 전 총선 투표율은 젊은 층이 적극 참여해 62%를 기록했지만, 이번엔 현 정부에 실망한 중도·개혁 성향의 유권자가 대거 기권한 것으로 분석된다.
수도 테헤란의 투표율은 25%로 더 낮았다. 이란 지도부는 총선을 앞두고 총선 참여가 미국의 압박에 맞선 '종교적 의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투표를 독려했다.
이란 내무부는 총선일이었던 21일 유권자가 투표소에 계속 온다면서 세 차례나 종료 시각을 연장해 오후 11시에서야 투표를 마감했지만 '총선 최저 투표율'을 막지는 못했다.
압돌레자 라흐마니 파즐리 내무부 장관은 "총선 당일 궂은 날씨와 코로나19 확산, 수해, 항공 사고(여객기 격추), (지난해 11월 반정부) 시위 등 부정적인 요인을 고려하면 그런대로 괜찮은 투표율이다"라고 평가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23일 "적들(서방)의 언론이 어떻게 해서라도 투표율을 떨어뜨리려고 부정적 여론전에 열을 올렸다"라며 "그들은 코로나19까지 끌어들여 이란 국민이 투표소에 가지 못하도록 방해했다"라고 비판했다.
이란 총선은 대선거구제로, 주(州)를 기준으로 나뉜 선거구에 인구 비례로 의석을 할당하고, 유권자는 투표용지 1장에 이 의석수만큼 선택한 후보 이름을 적는다.
예를 들어 테헤란 선거구의 유권자는 투표용지에 후보자의 이름을 최다 30개까지 적을 수 있다.
이 표를 합산해 다득표한 후보 순으로 당선자가 결정되는 방식이다. 당선 순위 안에 들어도 득표율이 20%에 못 미치면 두 달 뒤 결선 투표로 최종 당선자가 가려진다.
hska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