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재위 기간 비밀문서 내달 2일 학자들에 공개…선종 62년만
'독일 나치의 유대인 박해 저지 소극적이었나' 논란 종식될지 주목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교황청이 내달 초 2차 세계대전 기간과 겹치는 교황 비오 12세 시절 비밀문서를 공개할 예정이어서 가톨릭교와 역사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끈다.
23일(현지시간) 가톨릭교계 등에 따르면 교황청은 제260대 교황 비오 12세 재위 기간(1939∼1958) 기록된 비밀문서를 내달 2일 연구자·학자 등에게 공개한다.
문서는 주제별로 121 섹션으로 나뉘며, 수백만 쪽에 달하는 규모다.
문서 공개 시점은 관례보다 크게 앞당겨진 것이다.
교황청은 통상 특정 교황의 재위 마지막 해로부터 70년이 지난 뒤 해당 교황 재위 시절 작성된 문서의 비밀을 해제해왔다. 이에 따르면 비오 12세 때의 문서 공개 시점은 2028년이다.
이처럼 예외를 두게 된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결단에 따른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작년 3월 교황청 사도문서고(옛 비밀문서고) 직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교회는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문서 조기 공개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문서가 공개되는 내달 2일은 비오 12세가 교황으로 즉위한 지 81주년 되는 날이다.
해당 문서가 특히 주목을 받는 것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참사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2차 세계대전과 관련한 비오 12세의 역할과 입장을 조명할 단서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독일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의 악몽을 겪은 일부 유대인과 역사학자들은 비오 12세가 나치의 대대적인 박해에 직면한 유대인을 돕는데 소극적이었다고 비판해왔다.
반면에 교황청은 비오 12세가 유대인이 행여나 더 큰 곤경에 처할까 두려워 물밑에서 조용히 조력했다는 입장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둘러 문서 공개를 결정한 것도 이러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과거 비오 12세를 둘러싼 논쟁에 일부 편견과 과장이 섞여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실제 교황청 안팎에서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일부나마 살아있을 때 문서를 공개해 역사적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내달 2일 문서 열람을 신청한 전문가 중에는 미국 워싱턴에 있는 홀로코스트 기념박물관 소속 학자들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공개되는 문서가 비오 12세 재위 기간의 역사학적 판단에 필요한 단서를 제공할지는 미지수다.
교황청 한 관계자는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학자들이 결정적인 증거를 발견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면밀한 검토와 연구를 거쳐 비오 12세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나오기까지 길게는 수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들여다봐야 할 문서의 양이 방대한 데다 학자들 사이의 복잡하고 치열한 논증 과정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교황청은 문서 공개 후 모든 역사적 평가를 학자들 손에 맡겨둔다는 입장이다.
교황청 사도문서고의 책임자인 세르조 파가노 주교는 "우리는 학자들 개개인이 자신만의 결론을 내리도록 놔둘 것이며, 이에 대해 어떠한 두려움도 없다"고 단언했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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