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다서 어려운 피부세포 재생 위해 최장 1만1천㎞ 왕복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고래는 몇개월에 걸쳐 수천킬로미터를 여행하는 장거리 여행가로 알려져 있다.
북극 해역에서 먹이활동을 하는 고래가 열대 해역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이유를 놓고 먹이 때문이라는 분석에서 새끼를 낳아 기르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설이 제시돼 왔다.
오리건대학 해양포유류연구소의 해양생태학자 로버트 피트먼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그 이유를 피부 건강에서 찾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개나 고양이 등 다수의 동물이 털갈이하듯 고래도 끊임없이 피부세포를 재생하는데, 찬 바다에서는 이것이 어려워 따뜻한 물을 찾아 수천킬로미터를 이동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62마리의 고래에게 위성 추적기를 부착하고 8년에 걸쳐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북극해에서 먹이활동을 하는 4종의 범고래 모두 왕복 최장 1만1천㎞에 이르는 장거리 이주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열대 해역까지의 이동 과정은 빠르고 쉼 없이 직선으로 이뤄졌다.
대상 고래들 중 한 마리는 5.5개월 사이에 두 차례나 열대 해역에 다녀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 과정에서 북극해에서 새로 태어난 범고래 새끼도 확인해 고래가 새끼를 낳기 위해서 반드시 따뜻한 해역으로 옮겨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파악했다.
연구팀은 "고래가 새끼를 낳기 위해 열대나 아열대 해역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피부 재생을 위해 따뜻한 바다를 찾았다가 새끼를 낳기에 적합하다는 것을 알고 분만을 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북극해 주변에서는 고래의 흰색 배 부분이 미생물인 규조(珪藻)로 덮여 누렇게 변해 있는 것이 자주 목격된다. 찬 바다에서는 체온 유지를 위해 피부 가까이로는 혈액을 보내지 않아 피부세포가 정상적으로 재생되지 않는데, 이 바람에 피부에 붙어있는 규조도 떨어져나가지 않아 남아 고래의 배 색깔까지 바꾸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북극해에서 배가 흰 고래들은 최근에 따뜻한 해역을 다녀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벨루가로 알려진 흰고래도 여름에 담수와 해수가 섞이는 하구 주변에 모여드는데 이 역시 피부 재생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제시됐다.
하구 주변은 벨루가가 원래 서식하던 곳보다 수온이 높고 얕다. 처음에는 새끼를 낳아 기르기에 적당해 모여드는 것으로 여겨졌으나 바다표범처럼 피부세포 재생을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고래목 중 연 단위로 피부재생을 하는 종은 벨루가가 유일한 것으로 여겨져 왔으나 북극해 주변의 고래가 열대해역으로 이동하는 것이 피부재생 때문인 것이 사실이라면 연 단위 피부재생이 "고위도 해역 고래목의 일반적인 규칙이라는 점을 입증하는 것일 수 있다"고 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결과를 '해양 포유동물 과학'(Marine Mammal Science) 최신호를 통해 발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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