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초 中 직항노선 중단, 감염자 수는 최다 아이러니
당황한 이탈리아 정부, 바이러스 첫 전파자 찾기에 총력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이탈리아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200명을 넘어서며 바이러스 공포가 반도 전역을 덮쳤다.
최근 며칠 사이 감염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한 북부 지역은 전시 상태에 준하는 긴장감마저 느껴진다.
이탈리아 경제·금융 중심지인 밀라노의 명소인 두오모 성당은 폐쇄됐고, 세계적인 수상 도시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광장에도 인적이 끊겼다.
평소 수많은 인파로 북적이던 박물관·미술관·오페라 공연장이 문을 닫는가 하면 음식점과 바, 상점 등도 자체 휴업에 들어갔다.
주민들에 대한 이동 제한령이 내려진 일부 지역에선 생필품 '사재기'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24일(현지시간) 현재 이탈리아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229명으로 바이러스 발원지인 중국, 일본(크루즈 감염자 포함), 한국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다.
아시아 이외 지역에서 바이러스 확진자 수가 200명을 넘어선 국가는 이탈리아가 처음이고 유일하다.
독일(16명), 영국(13명), 프랑스(12명) 등 유럽 주요국의 확진자 증가세가 정체됐거나 완만한 상승 곡선을 그릴 때 이탈리아만 홀로 탄력을 받았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이탈리아 내 급속한 바이러스 확산에 우려를 표했을 정도다.
지리적으로 중국과 상당히 멀리 있는 이탈리아의 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할 것이라고 예상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이탈리아 정부의 초반 대응은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신속하고 강력했다.
지난달 말 로마에 체류하던 60대 중국인 관광객 2명이 최초로 바이러스 확진 판정을 받자 이탈리아 정부는 곧바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4월 말까지 중국 본토와 홍콩, 마카오, 대만 등을 오가는 직항노선 운항을 중단했다.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것도, 중국을 오가는 직항 여객기 운항을 중단한 것도 유럽 국가 중 처음이었다. 가장 친중(親中)적인 유럽 국가가 중국의 체면을 꺾는 의외의 대응을 선택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중국 외교당국이 과잉 대응이라고 불만을 터뜨리며 운항 재개를 요청했지만, 이탈리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후 중국 우한에서 철수한 자국민 1명이 확진 판정을 받은 거 외에는 3주가량 이탈리아 내에서 추가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다. 이탈리아 정부의 '발 빠른' 대응 노력이 효과를 보는 듯했다.
분위기가 급반전된 것은 지난 21일이다. 밀라노가 속한 롬바르디아주(州)와 베네치아가 주도인 베네토주를 중심으로 확진자가 한두명씩 추가로 나오더니 주말·휴일을 거치며 그 수가 눈덩이처럼 불었다.
방역에 자신감을 보이던 이탈리아 정부를 당황케 하는 상황이 연일 이어졌다. 주세페 콘테 총리도 이를 전혀 예상치 못한 듯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문제는 이탈리아 정부조차 어떻게 이 사태가 초래됐는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파악된 바로는 밀라노에서 남동쪽으로 약 70㎞ 떨어진 코도뇨(Codogno)라는 지역에 거주하는 38세 남성이 이른바 '슈퍼 전파자'라는 것이다.
이 슈퍼 전파자가 이탈리아에서 가장 부유한 주로 꼽히는 롬바르디아를 최대 바이러스 거점으로 만들었다.
중국 등을 여행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이 남성은 지난 19일 폐렴 증세로 코도뇨 병원에 입원했다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후 이 병원 의사·간호사·환자 중에서 감염자가 쏟아져나왔고, 이들과 접촉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지역 사회에 급속히 전파됐다.
최대 의문은 이 남성이 어떻게 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다. 이 남성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현재까지 오리무중이다.
당국은 역학조사 과정에서 이 남성이 중국을 오가며 사업하는 한 친구를 만난 것으로 파악하고 그를 상대로 바이러스 검사를 했으나 음성 반응이 나왔다.
롬바르디아에 이어 두 번째로 감염자가 많은 베네토주 역시 최초 전파자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당국은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중국인 사업가 8명을 의심했으나 이들 역시 바이러스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다.
현재로선 롬바르디아와 베네토의 확진자들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물론 여러 가지 이론적 추정은 가능하다.
이탈리아 정부는 중국에서 곧바로 들어오는 것을 입국자들을 막았을 뿐 제3국을 경유해 들어오는 방문객들까지 통제하지는 않았다. 오스트리아·스위스 등 인근 국가에서 버스나 기차 등을 이용해 넘어오는 것도 허용했다.
중국인 여부를 떠나 바이러스 감염자가 중국 직항노선 외에 다른 방법으로 입국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상공업이 발달한 이탈리아 북부는 우한 출신 중국인 사업가들이 꽤 많이 활동하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에 오랜 기간 거주한 한 교민은 "이탈리아 북부와 프랑스, 독일 등을 중심으로 사업을 하는 우한 출신 중국인들 수가 상당하다. 이들이 국경을 넘어 오가는 와중에 바이러스가 확산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정부가 직항노선 운항을 중단하기 직전 우한 등 위험지역을 다녀온 자국민 한 명이 최초 전파자일 가능성도 충분하다.
바이러스 확산에 대한 경각심이 고조되기 전이어서 본인은 물론 주변 사람들도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했을 수 있다. 이때는 이탈리아 당국 역시 우한 등 위험 지역을 다녀온 사람들에 대해 격리 등 별도의 조처를 하지 않았다.
북부 지역에 감염자가 속출한 시점과 다소 시차가 있지만 최근 2주 넘는 잠복기를 가진 사례도 확인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불가능하다고 치부할 수만은 없는 추정이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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