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공항 도착 즉시 격리…"제대로 씻지도, 자지도 못했다"
일부 자가격리로 전환 시작…한국대사관 긴급대응팀, 당국 설득
(하노이=연합뉴스) 민영규 특파원 = 베트남 하노이 공항으로 지난 28일 입국한 한국민 가운데 100명 이상이 이틀째 공항과 병원 등지에 강제로 격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베트남 당국이 입국을 금지한 대구·경북 거주자나 최근 14일 안에 이곳을 방문한 사람이 아니어서 발열 등의 증상이 없으면 원칙적으로 자가격리를 하게 돼 있는데 졸지에 발이 묶인 것이다.
29일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전날 하노이 공항으로 입국한 한국민 100명 안팎이 이 하노이 외곽에 있는 군부대와 병원 등지에 격리돼 있고, 하노이 공항에도 수십명이 격리된 상태다.
또 같은 날 입국한 200명가량은 이미 귀국했고 공항에 격리된 일부도 29일 밤 귀국할 예정이다.
다만 공항에 격리돼 있던 한국민의 경우 29일 오후부터 자가격리로 전환되면서 이미 40여명이 하노이 시내 숙소로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노완 주베트남 대사를 비롯한 한국대사관 긴급대응팀이 베트남 당국을 적극적으로 설득해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노이와 달리 전날 밤 호찌민 공항으로 입국한 한국민 약 200명 가운데 19명은 격리를 우려해 곧바로 귀국했고, 나머지는 지역 보건소에서 검역을 받은 뒤 자가격리 처분을 받아 행선지로 떠났다고 호찌민 한인회가 전했다.
한국대사관은 29일 오후 6시(이하 현지시간) 현재 대구·경북 출신이나 최근 14일 안에 이곳을 방문한 사람을 포함해 한국민 217명이 베트남의 군부대와 병원 등 시설에 격리된 상태라고 밝혔다.
인천발 여객기를 타고 지난 28일 오후 2시 25분 하노이 공항에 도착한 A(21·여) 씨는 29일 연합뉴스 특파원과 통화에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여권을 압수당해 아직 돌려받지 못했다"면서 "지금은 한국인 60∼70명이 공항 내 별도 공간에 격리돼 있다"고 말했다.
A 씨는 "자가격리로 알고 입국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서 "제대로 씻지도, 잠을 자지도 못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이렇게 한다는 것을 알겠지만, 아직 검사도 받지 못했다"면서 "무조건 방치된 상태라고 보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곳에는 노인과 아이도 있다"고 전했다.
지난 28일 오전 11시께 하노이에 도착해 아직 공항에 격리된 B(42) 씨는 "어린아이들은 힘든 상황을 견디지 못해 토하기도 했다"고 열악한 상황을 소개했다.
B 씨는 또 "당국이 한때 군부대로 이동한다면서 군용트럭에 태웠다가 군부대에 시설이 부족하다며 다시 하차시켰다"면서 "여성과 어린이들이 몹시 불안해했다"고 전했다.
같은 날 밤 하노이 공항에 도착했다가 공항에 그대로 격리된 C(75·여) 씨는 "내내 앉아 있어야 하고 잠을 잘 수가 없어서 너무 힘들다"면서 "하노이 교민이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귀국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라고 말했다.
28일 오전 11시께 하노이에 도착한 D(26·여) 씨는 8시간가량 공항에 발이 묶여 있다가 다른 한국인 남성 10명과 함께 하노이 외곽에 있는 군부대에 격리된 후 아직 검사도 받지 못한 채 방치돼 있다고 밝혔다.
D 씨는 "20명가량이 함께 자는 기숙사 같은 공간에 있는데 안에서 문을 잠글 수 없는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하소연했다.
베트남 당국은 29일 0시부터 한국민에 대한 15일 무비자 입국 허용을 임시 중단했다.
또 한국발 여객기의 하노이 공항 착륙을 임시로 허가하지 않기로 해 이날 오전 10시 10분 인천에서 승객 40명을 태우고 출발했던 아시아나항공 여객기가 긴급 회항하는 일이 벌어졌다.
다만, 하노이에 격리된 한국민을 귀국시키기 위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이날 오후 승객을 태우지 않은 여객기 1편씩을 인천에서 하노이로 보낸 뒤 밤늦게 인천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youngky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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