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한국인 입국 금지'에…프로젝트 차질·가족 생이별 속출

입력 2020-03-05 13:12  

인도 '한국인 입국 금지'에…프로젝트 차질·가족 생이별 속출
기술자 등 전문인력도 입국 못 해…"신제품 출시 지장 우려"
출장자, 해외에서 발 묶이기도…"필수 인력 입국 허용해야"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신흥 시장으로 주목받던 인도가 3일부터 갑작스레 한국인에 대한 입국을 사실상 금지하자 현지 진출 한국 기업과 교민 사회가 큰 혼란을 겪고 있다.
필수 인력이 인도에 들어가지 못하면서 기업 프로젝트에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고, 가족 간 '생이별'도 빚어졌다.
인도 정부는 3일 한국인 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주요 발생 지역 국민에게 발급된 기존 모든 비자의 효력을 정지시켰다.
이미 인도 내에 입국한 이의 기존 비자 효력만 유지해줬고 신규 비자는 긴급한 사유만 발급해 주기로 했다.
인도 내에 체류한 이들이 외국으로 나갈 경우에도 비자의 효력이 사라지기 때문에 한국인은 인도로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당장 주재원의 출입국이 불가능해지면서 기업 활동에 심각한 제약이 생겼다.
인도는 다른 나라에 비해 비즈니스 인프라가 열악한 데다 인력 관리나 협상이 쉽지 않아 주요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때는 대면 접촉이 필수적인 곳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곳이 수도 뉴델리 인근 노이다의 삼성디스플레이 공장이다.
삼성은 세계 최대 휴대전화 공장이 있는 이곳에 디스플레이 공장을 신설, 시너지를 노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디스플레이 공장의 본격 가동 시점은 올해 말이다.
이제 공장의 첨단 시설 구축을 위해 한국에서 전문 인력이 와야 할 시점인데 핵심 기술자가 못 들어오게 됐다.
모바일, 자동차, 가전 등 신제품이나 신차를 계속 출시해야 하는 한국 업체에도 비상이 걸렸다.
신제품 개발이나 신차 제작 라인 개설 때는 한국에서 전문 기술자가 입국해 업무를 진행했는데 역시 차질이 생기게 됐다.
A사의 직원은 "한국 주재 인도대사관은 비즈니스는 긴급한 사유가 아니라는 이유로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며 "이런 상태가 지속하면 다음 달부터는 생산 차질이 가시화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런 우려는 무역, 건설, 유통, 화학 등 다른 분야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한 인테리어 업체 관계자는 "인편을 이용해 양질의 한국 자재를 반입해야 하고 전문 분야 시공을 위한 기술자가 한국에서 와야 하는데 차질이 생겼다"고 하소연했다.
업무 특성상 인근 나라 출장이 잦은 무역업체도 직격탄을 맞았다.
무역업체 관계자는 "인도를 본부로 서남아, 중동, 아프리카 등을 관할하고 있는데 출장이 막혔다"며 "가격 협상 등 마무리해야 할 중요 계약이 있는데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현대차 공장이 있는 남부 첸나이의 조상현 한인회장은 "연간 계획에 따라 현장 설비 증설이나 신설을 계획한 회사의 경우 납품업체나 본사의 기술자들이 들어오지 못해 향후 생산에 막대한 차질과 손실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그는 "제한적으로라도 입국이 허용될 수 있도록 외교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주인도한국대사관과 한국무역협회 뉴델리 지부 등은 인도 정부에 한국 기업의 어려움을 알리며 필수 인원에 대해서는 비자 발급 제한을 풀어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 내 수출 상담회, 각종 포럼, 구매사절단 한국 파견 행사 등도 줄줄이 취소됐다.
다만, 오프라인 행사를 온라인으로 전환해 행사 취지를 살려낸 경우도 있다.
코트라(KOTRA) 서남아본부는 이달 중순으로 예정된 구매사절단 파견 행사가 취소되자 화상상담 행사로 전환했다.
코트라 관계자는 "화상상담 행사로 대체하자 인도와 한국 측에서 각각 40여개사, 200여개사가 참여하겠다고 알려왔다"며 "오프라인 행사 때 참가하기로 한 한국 기업 수가 120여개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화상 행사에 대한 호응이 이례적으로 큰 셈"이라고 말했다.

이번 입국 금지 조치로 가족이 갑자기 헤어진 경우도 나왔다.
일부 주재원은 해외 출장을 떠났다가 가족이 있는 인도로 돌아오지 못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임기 만료를 앞두고 가족을 먼저 한국에 들여보낸 뒤 귀국하려던 가장이 인도를 떠나지 못하게 되기도 했다.
한국에서 후임자가 와야 업무를 넘기고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데 당분간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서부 아메다바드에 사는 한 가족은 네팔로 여행을 떠났다가 인도 입국이 막혀 한국으로 발을 돌렸다.
이들은 뉴델리를 경유해 지난 3일 아메다바드 공항에 도착했지만, 입국이 거부되면서 뉴델리의 인디라간디국제공항으로 이송됐다.
공항에서 '미아'가 될 위기에 처한 이들은 주인도한국대사관 측의 도움을 받아 결국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한 주재원은 "외국 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인도 정부의 말을 믿었는데, 배신감마저 느껴진다"며 "교민들도 이런 상황에 매우 불안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cool@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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