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칠레·아르헨티나 등에서 '여성의 날' 행진
여성폭력 근절 대책·불평등 해소·낙태 허용 등 요구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잉그리드, 마리아, 클라우디아, 파올라…
8일(현지시간) 멕시코 멕시코시티 도심의 소칼로 광장 바닥에 흰 종이로 여성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새겨졌다.
최근 몇 년새 누군가의 손에 목숨을 잃은 멕시코 여성들의 이름이다.
광장 중앙을 가득 채운 이름들은 이날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멕시코 여성들의 벌인 시위 중 하나였다.
멕시코 전역에선 이날 하루 많은 여성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수도 멕시코시티에선 초반 참가 인원이 3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해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여성의 날 행진이 진행되지만 올해 멕시코의 경우 예년보다 더 큰 분노와 절망이 거리에 표출됐다.
자꾸만 늘어나는 여성 대상 폭력과 기대에 못 미치는 정부의 대처로 분노와 불만이 가득 쌓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멕시코에선 3천825명의 여성이 살해됐다. 전년도보다 7% 늘어난 것으로, 하루에 10명이 넘는 여성이 희생되는 셈이다.
여성폭력 가해자가 붙잡혀 처벌을 받는 비율도 매우 낮다.
만연한 여성폭력의 원인을 신자유주의로 돌리는 등 현실과 동떨어진 당국의 반응도 분노를 키웠다.
이날 하루 거리에 나와 목소리를 높인 멕시코 여성들은 9일엔 반대로 집으로 꼭꼭 숨을 예정이다. 여성폭력 등에 항의하기 위해 여성들은 일터에도, 상점에도, 거리에도 나오지 않은 채 '여성 없는 하루'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이날 멕시코 외에 중남미 각국에서 여성의 날 행진이 펼쳐졌다.
유럽과 아시아 등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예년보다 행진 규모가 줄기도 했으나, 아직 코로나19 전파 초기인 중남미의 경우 외부 활동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많은 이들이 참여했다.
칠레에선 수도 산티아고에만 경찰 추산 15만 명이 모였다.
여성들은 여성폭력 근절과 차별 철폐 등을 요구하며 행진을 벌였다.
정부 청사 근처에서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로 시위대 16명이 연행되고, 경찰 19명이 부상하기도 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칠레의 경우 지난해 10월 불붙었던 사회 불평등 항의 시위가 이달 들어 다시 격렬해지면서 여성들의 시위도 더욱 탄력을 받았다.
이웃 아르헨티나에선 낙태 허용 요구가 시위 전면에 등장했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최근 임신 초기 낙태 허용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아르헨티나에는 낙태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다시 거세졌다.
여성들의 시위와 더불어 가톨릭을 중심으로 한 낙태 반대 맞불 시위가 펼쳐지기도 했다.
이밖에 브라질과 콜롬비아, 페루 등에서도 여성들이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높였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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