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WHO 때문에 '사스의 교훈' 국제보건규정 작동 실패"

입력 2020-03-11 17:00  

"중국·WHO 때문에 '사스의 교훈' 국제보건규정 작동 실패"
포린폴리시 지적…"팬데믹 뒤엔 중국 은폐·WHO 우유부단"
"회원국으로부터 WHO 독립성 확보하는 새 메커니즘 필요"

(서울=연합뉴스) 김정선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적으로 계속 확산하는 가운데 세계보건기구(WHO)의 다자주의 시스템이 이를 막는 데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 정부의 은폐행위도 막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10일(현지시간) 미국 외교전문 매체 포린폴리시(FP)에 따르면 2002~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 이후 2005년 WHO에 막강한 권한을 주는 내용으로 국제보건규정'(IHR)이 개정됐다.


이는 WHO에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는 것으로, 우선 비공식 정보에 근거한 조치와 회원국의 정책 결정에 대한 논의를 허용할 수 있게 했다.
WHO가 잠재적인 질병 발생 시 적절한 때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그 이유는 질병에 영향을 받은 국가들이 정치·경제적 이유로 발발 사실을 은폐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FP는 설명했다.
FP는 IHR 규정 개정은 중국에서의 실패 결과라며 사스 사태 시 중국 보건당국은 관련 정보를 다른 국가와 공유하기 이전에 광둥(廣東)성에서 새로운 형태의 폐렴 발생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중국은 최근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이동 제한을 포함한 '막강한' 조처를 했다.
FP는 그러나 "이러한 조치가 중국 국내 상황을 안정시키고 다른 국가에 준비할 시간을 벌어준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조치가) 전 세계적으로 바이러스 확산에 기여한 중국 정부의 초기 실책을 극복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코로나19 발생과 관련해 중국, 한국, 일본, 이탈리아, 미국 등 국가들의 정부가 개별적으로 비판을 받고 있으나 2005년에 개정된 다자주의 시스템인 IHR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을 묵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WHO는 다자주의의 작동실패 뒤에는 중국의 창궐사태 은폐와 WHO의 늑장대처, 고유권한인 비판을 자제한 행태가 있다고 주장했다.
IHR은 WHO에 막강한 권한을 줄 뿐 아니라 사무총장에게 공중 보건 비상사태를 선언할 수 있는 권한도 부여한다.
사무총장은 과학에 근거한 지침을 발표해 다른 국가들이 무역이나 여행 제한 시 이를 참고하게 할 수 있다.
국제기구가 이 같은 권한을 갖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WHO는 전염병 발발 확인과 무역 및 여행 규제, 인권 강화 등과 관련한 IHR 요건을 준수하지 않는 국가명을 언급할 수도 있다.


FP는 "개정된 IHR은 중국 정부가 코로나19 발발을 막거나 늦췄을 수도 있는 정보를 적극적으로 숨기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며 지방 경찰이 초기에 심각성을 알리려 한 의사와 다른 내부 고발자들을 처벌하거나 검열한 사례를 거론했다.
지난 1월 12~20일에는 중국 정부 관리들은 15명의 보건 근로자 감염 정보를 보고하지 않았으며 사람 간의 전파 증거 또한 제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자국민 스스로가 감염을 피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공중보건 정보도 공유하지도 않았다고 FP는 지적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중국이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지난 1월 30일에야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언했다.
이때는 이미 4개 대륙의 19개국으로 코로나19가 확산해 8천명의 감염이 확인된 시점이었다.
WHO는 각국이 코로나19 발생 국가에 입국 또는 무역 규제 조처를 하자 이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지만, 미국을 포함해 관련 조처를 한 수십 개 국가를 비판하는 데는 소극적이었다.
FP는 "은폐에 대해 중국을 거론하고 무안을 주는 대신 WHO는 중국이 취한 막강한 조치를 칭찬하며 1월 20일 이후 벌어진 일들에 초점을 두기로 했다"고 평했다.
물론 WHO의 자세를 방역을 위해 중국과 계속 협업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실용주의적'으로 보거나 WHO가 과학에 근거한 지식을 시기적절하게 공유했다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FP는 사스를 통해 얻은 소중한 유산인 다자주의 체계를 마비시킨 것은 뚜렷한 실패이고 IHR이 묵살되는 사례는 이번 뿐만 아니라 이전 사례에서도 관측된다고 지적했다.
FP는 "전 세계적 보건 안전을 위한 다자주의 시스템의 문제는 코로나19 발발, 중국, WHO의 현재 리더십에 국한되지 않는다"며 2013~2015년 민주 콩고에서 에볼라 바이러스 발생 시에도 IHR 권한 행사가 지연됐다고 예시했다.
FP는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위험한 질병에 대처할 수 있는 새로운 '메커니즘'이 필요할 수 있으며, 이는 영향을 받는 회원국으로부터 더 많은 독립성을 가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js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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