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시보 불과…경증환자들 아무것 안해도 결국 나았을 것"
중의학은 시진핑식 애국주의…WHO '전통치료 자제' 권고했다 철회
(서울=연합뉴스) 현혜란 기자 = 중국 우한(武漢)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입원했다가 지난달 말 완치한 슝칭전(38) 씨는 '폐를 청소하고 독소를 제거해주는 탕약'을 의무적으로 복용해야 했다고 한다.
슝씨가 "플라시보에 불과하다"고 믿는 이 탕약은 중국 정부가 코로나19 환자 치료에 적극적으로 권하는 중국전통의학(TCM·Traditional Chinese Medicine) 처방에 따라 만들어진 약이다.
중국 과학기술부는 지난달 말 기준 중국 내 코로나19 환자 중 85% 이상이 항바이러스제와 함께 한약을 처방받았을 정도로 TCM은 중국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지만 이를 둘러싼 회의론은 중국 안팎에서 여전하다고 미국 CNN 방송이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중국 국가중의약관리국 위옌훙 부국장은 중의학이 "전신의 건강을 조절하고 면역력을 향상함으로써 환자의 면역력과 회복능력을 자극한다"며 2002∼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에도 큰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위 부국장은 중국 우한(武漢)에서 코로나19 경증 환자 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임상시험에서 서양의학으로만 치료받는 환자와 비교했을 때 중의학과 복합 치료를 받은 환자의 회복률이 33% 더 높았다고 소개했다.
증세가 심각한 코로나19 환자를 대상으로 한 다른 연구에서는 서양의학과 중의학 치료를 함께 받은 환자가 서양의학에만 의존한 환자보다 더 빨리 퇴원했으며, 여러 지표상 더 건강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위 부국장은 덧붙였다.
하지만 위 부국장인 언급한 임상시험과 연구 결과는 표본 숫자가 작을 뿐만 아니라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19 환자만을 대상으로 진행했다는 점에서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워싱턴DC에 본부를 둔 외교협회 산하 세계보건담당 옌중 황 선임연구원은 "코로나19 환자의 80%는 가벼운 증상을 보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더라도 그들은 결국 회복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안에서는 코로나19 치료에 중의학을 병행하는 비율이 높을지라도 안전성과 신뢰성을 확보하지 못한 만큼 다른 나라에서 중의학을 수용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고 CNN은 설명했다.
황 연구원은 "중의학 제품 대부분은 서구 현대 의학이 전형적으로 진행하는 엄격한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며 "이것이 바로 서양에서 중의학을 신뢰하지 않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해 처음으로 중의학, 한의학 등을 포괄한 '전통의학'을 국제질병 분류체계에 포함해 2022년부터 발효하기로 했지만 이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WHO는 애초 홈페이지에 코로나19 환자에게 "전통적인 한방 치료제 복용을 피하라"고 권하며 중의학을 사용하지 말라는 글을 올렸었으나 이 내용은 얼마 뒤 사라졌다고 CNN은 전했다.
WHO는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 올린 글에서 "3월 4일 제네바에서 열린 회의에서 코로나19 가벼운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전통적인 의약품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았다며 이 내용을 삭제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황 연구원은 "중국에서는 항상 중의학과 정치 사이에 흥미로운 결합이 있었다"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체제에 들어와서는 중의학이 "애국의 상징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중국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웨이보(微博)에 중의학에 기반한 탕약 치료를 거부하고 이를 비판하는 글을 올린 슝칭전씨는 온라인 괴롭힘에 시달렸고, 이와 유사한 비판을 해온 유명 웨이보 이용자는 계정이 삭제됐다.
시 주석은 지난달 10일 베이징(北京)시의 코로나19 예방통제 상황을 점검하면서 중의학과 서양 의학을 총동원해 감염률과 치사율을 낮추는 효과적인 치료 방안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고 인민일보가 보도했다.
run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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