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홍콩 번화가 점포 폐업 속출…'실업대란' 우려

입력 2020-03-21 07:07  

[특파원 시선] 홍콩 번화가 점포 폐업 속출…'실업대란' 우려
시위사태 이어 코로나19 확산에 심각한 불황 "사스 때보다 심각"
여행·호텔·음식료·항공·소매업 등 종사자 '실직 공포' 확산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나름대로 인생 계획을 세웠지만, 전염병이 확산하면서 모든 것이 무너졌습니다. 지금 이 나이에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내 인생이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홍콩과 중국 본토 선전(深천<土+川>)을 오가는 버스 회사에서 운전사로 일했던 렁와이퀑(66) 씨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토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고자 지난달 초부터 홍콩 정부가 중국 본토와의 접경을 사실상 봉쇄하면서 렁 씨는 일자리를 잃고 말았다.
이후 그는 배달, 청소 등의 시간제 일자리를 가끔 얻었지만, 지난 한 달 간 그가 벌어들인 돈은 고작 2천 홍콩달러(약 32만원)에 불과했다.
렁 씨의 사례는 코로나19 확산 후 수많은 홍콩인이 처한 암울한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바로 생계를 유지할 일자리의 상실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홍콩의 실업 문제는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
금융, 무역, 물류 등 홍콩 경제를 지탱하는 주요 산업 부문이 견실한 흐름을 이어가면서 지난해 6월부터 이어진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은 크게 오르지 않았다.
지난해 말 홍콩의 실업률은 완전고용에 가까운 3.4%를 기록했다. 시간당 최저임금이 34.5홍콩달러(약 5천500원)에 불과할 정도로 낮아 사업주가 종업원 고용에 따른 부담을 크게 느끼지 않는 것도 고용 유지에 한몫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
지난해 6월부터 연말까지 이어진 송환법 반대 시위에 이어 올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확산한 코로나19로 인해 홍콩의 사업주들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종업원 해고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관광산업 비중이 큰 홍콩에서 가장 심각한 분야는 호텔, 음식료, 소매업 등 분야이다.
지난해 하반기에도 송환법 반대 시위로 인해 홍콩을 찾는 관광객이 크게 줄었지만, 올해 들어서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지난해의 감소 폭은 '양호했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관광객이 급감하고 있다.
홍콩을 방문하는 관광객은 지난해 2월 일평균 20만 명에 달했으나, 올해 1월에는 10만 명 수준으로 줄어들더니 지난달에는 고작 3천 명가량에 불과했다.
이는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대유행해 홍콩 방문 관광객 수가 가장 적었던 2003년 5월의 일평균 1만 명보다도 훨씬 적은 수이다.
홍콩 현지에서 여행 관련 사업체를 운영하는 한인 교포 A씨는 "최근 종업원들을 모두 무급휴가 형식으로 내보냈다"며 "지난해 시위 때만 하더라도 어떻게든 버텨보자는 심정이었지만, 올해 코로나19 사태까지 터지니 더는 버틸 재간이 없다"고 말했다.
홍콩 내 주요 호텔의 객실 점유율은 현재 10%에도 못 미쳐 사스 대유행 때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어서 호텔마다 인력 조정에 나서 무급 휴가는 물론 정리해고를 단행하는 호텔이 속출하고 있다.
음식료업과 소매업도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홍콩을 대표하는 해산물 식당 중 하나이자 영화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유명 식당 '점보 킹덤'(珍寶)은 추후 통지가 있을 때까지 무기한 영업을 중단한다고 이달 초 밝혔다.
1976년 마카오 카지노 재벌 스탠리 호가 세운 이 해상 식당은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할리우드 배우 톰 크루즈가 방문할 정도로 유명한 식당이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타격을 견뎌내지 못했다.
홍콩의 대표적인 번화가인 침사추이, 코즈웨이베이, 완차이 등에서도 식당과 소규모 점포의 폐업이 잇따르고 있고, 이는 종업원들의 실직 사태로 이어지고 있다.
올해 초 홍콩의 실업률은 3.7%로 지난해 말보다 소폭 상승했는데, 음식료 서비스 부문의 실업률은 무려 7.5%에 달했다.



항공업계의 일자리 문제도 심각해지고 있다.
홍콩의 저비용 항공사인 홍콩익스프레스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승객 수 급감으로 오는 23일부터 다음 달 말까지 모든 항공편의 운항을 중단하기로 했다.
홍콩익스프레스의 모회사이자 홍콩 최대 항공사인 캐세이퍼시픽도 사정은 비슷해 다음 달과 5월에 당초 예정했던 항공편 가운데 무려 96%를 중단한다. 이 회사가 보유한 비행기 236대 중 200대가량이 당분간 뜨지 못할 전망이다.
이는 2003년 사스 대유행 당시 항공편의 45%를 중단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다.
이러한 경영난으로 인해 홍콩익스프레스 직원의 96%, 캐세이퍼시픽 직원의 75%가 특별 무급휴가에 참여하기로 했다. 당분간은 무급휴가를 유지하겠지만,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해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홍콩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인 디즈니랜드, 오션파크, 옹핑 케이블카 등도 코로나19 확산으로 문을 닫아 그 종업원들이 일자리를 잃는 등 홍콩의 '실직 공포'가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홍콩 정부는 극심한 침체에 빠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 지난달 총 300억 홍콩달러(약 4조8천억원)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마련, 시행하기로 했지만, 이 부양책이 실업난 해소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로치퀑 홍콩 노동복지부 장관은 "현재 추세는 매우 우려스러우며, 올해 홍콩의 실업률은 4∼5% 수준까지 치솟을 수 있다"며 "이러한 추세를 되돌리기 위해서는 코로나19 확산을 저지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ssah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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