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헬리콥터로 달러 살포' 귀환…벼랑끝 기업·가계까지 수혈

입력 2020-03-24 04:32   수정 2020-03-24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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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 '헬리콥터로 달러 살포' 귀환…벼랑끝 기업·가계까지 수혈
"2008년 금융위기 교본 뛰어넘었다"…'대량해고→ 실물 붕괴' 악순환 위기감
회사채·상업용 MBS·카드론·오토론까지 매입…비상기구 전방위 가동




(뉴욕=연합뉴스) 이준서 특파원 = "경제는 극심한 혼란에 직면했다.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하겠다"
23일(현지시간) 발표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성명엔 강한 위기감이 묻어났다. 중앙은행 특유의 모호한 표현을 배제한 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경제적 후폭풍을 최소화하기 위한 세부 조치들을 줄줄이 나열했다.
지난 15일 '제로금리'와 양적완화(QE)를 결정한 이후로 연일 유동성 조치를 쏟아냈지만, 시장 불안이 진행되지 않자 새로운 한주의 시작에 맞춰 파격적인 카드를 한꺼번에 던진 셈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의 교본을 그대로 차용하면서도, 유례없는 신규 조치들을 함께 꺼냈다. 특히 연준이 회사채를 매입하는 것은 금융위기 때도 쓰지 않았던 카드다.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연준은 2008년보다 더 빠르게, 더 폭넓게 움직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른 주요국의 유동성 공급과는 차원의 다른, 기축통화국 중앙은행으로서 '달러 발권력'을 총동원한 셈이다.
스위스 중앙은행이 이날 7억1천100만 달러(약 9천억원) 규모의 유동성을 공급한 것을 비롯해 유럽중앙은행(ECB)·일본은행(BOJ) 등 주요국 중앙은행도 일제히 유동성 대책으로 보조를 맞추고 있지만, 결국은 연준 조치의 성패에 시선이 쏠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 '헬리콥터로 달러 살포'의 귀환…세계 곳곳에 무제한 달러 푼다
한마디로 달러를 무제한 찍어내겠다는 것이다.
국채와 MBS를 7천억달러 한도에서 사들이는 방식으로 유동성을 공급하는 양적완화(QE) 정책에 돌입한 지 8일 만에 그 한도를 없앴다.
연준은 성명에서 "시장 기능을 지원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만큼(in the amounts needed)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을 매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금융위기 당시 헬리콥터로 하늘에서 살포하듯 무제한으로 달러를 공급했던 '헬리콥터 벤' 벤 버냉키 전 의장의 무제한 양적완화 정책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경제매체 CNBC 방송은 '돈 찍어내기'(money printing)의 새 국면이 시작됐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조치의 메시지는 '발권 기계'를 점화할 준비가 됐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연준의 공개시장조작 정책을 담당하는 뉴욕 연방준비은행 차원에서도 환매조건부채권(Repo·레포) 거래를 통해 만기별로 광범위한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다.
MUFJ 유니온 은행의 크리스 럽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CNBC 방송에 "최종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인 중앙은행이 이제는 최종 매수자(buyer of last resort)가 됐다"고 말했다.
세 차례 양적완화를 거치면서 지난 2014년 4조5천억 달러까지 불어났던 연준의 자산은 다시 5조 달러를 훌쩍 웃돌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해외 중앙은행과의 통화스와프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글로벌 달러 시장의 유동성을 풍부하게 유지하겠다는 취지다.
연준은 지난 15일 유럽중앙은행(ECB)·영란은행·일본은행·캐나다중앙은행·스위스 중앙은행과의 통화스와프 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고, 20일에는 통화스와프 거래 만기를 기존 7일에서 하루로 단축했다.
19일에는 한국과 호주, 브라질 등 9개국 중앙은행과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연준의 통화스와프 협정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처럼 모두 14개국으로 늘어나게 됐다.



◇ 곳곳의 신용경색 시그널…'상업용 MBS부터 카드론까지' 비상기구 총가동
유동성을 투입하는 범위도 대폭 확대했다.
뮤추얼펀드부터 기업어음(CP)과 회사채, 상업용 MBS, 카드론까지 곳곳에서 신용경색 조짐이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 하이일드 채권시장의 스프레드(국채금리와의 격차)는 무려 10%포인트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지금까지 발표된 특수목적 대출 장치들만 총 5개에 달한다. 연준은 원칙상 민간 부분에 유동성을 공급할 수 없는 만큼 대출기관을 통한 우회로를 선택한 것이다.
우선 2개 비상기구를 통해 '투자등급' 우량 회사채 시장에 개입하기로 했다.
발행시장을 담당하는 '프라이머리 마켓 기업 신용 기구'(PMCCF), 유통시장을 지원하는 '세컨더리 마켓 기업 신용 기구'(SMCCF)를 통해 긴급 유동성을 공급하게 된다.
미국 회사채 시장은 약 9조5천억 달러 규모로, 이 가운데 절반가량인 투자등급 시장의 숨통을 틔워주겠다는 취지다.
발행시장에서는 4년 한도 브릿지론을 제공하고, 유통 시장에서는 우량 회사채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 등을 매입하게 된다.
2008년 당시 가동됐던 '자산담보부증권 대출 기구'(TALF·Term Asset-Backed Securities Loan Facility)도 부활시켰다.
신용도가 높은 개인 소비자 금융을 지원하는 기구다. TALF는 학자금 대출, 자동차 대출, 신용카드 대출, 중소기업청(SBA) 보증부대출 등을 자산으로 발행된 자산유동화증권(ABS)을 사들이게 된다.
환매 압박을 받는 머니마켓 뮤추얼펀드 시장을 지원하기 위한 '머니마켓 뮤추얼펀드 유동성 기구'(MMLF)는 지방채 매입 범위를 넓히기로 했다.
통상 3개월짜리 기업어음(CP)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기업어음(CP) 매입기구'(CPFF) 지원 대상에는 비과세 CP를 추가하기로 했다.
'상업용 MBS'를 매입하기로 결정한 것도 주목된다. WSJ은 "연준이 상업용 부동산 부분까지 개입하게 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밖에 금융위기 당시 도입한 재할인 창구(discount window)가 다시 가동됐고, 재할인 창구를 주요 투자은행과 증권사 등 '프라이머리 딜러'들에게 개방하는 '프라이머리 딜러 신용공여'(Primary Dealer Credit Facility·PDCF) 조치도 도입된 바 있다.


◇ '대량해고→소비자금융 붕괴' 악순환 차단
이번 조치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실물경제 대책이다.
코로나19 사태가 금융시장뿐만 아니라 기업·가계경제까지 무너뜨리는 복합 쇼크로 가고 있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기본적으로 실물경제 지원은 재무부를 중심으로 연방정부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기는 하지만, 통화당국 역시 손 놓기 어려울 정도로 위기감이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기업들이 대량 해고에 나서면서 충격파가 가계 부문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연준이 투자등급으로 제한하기는 했지만 회사채 시장에 개입하고 개인 소비자금융을 지원하는 '자산담보부증권 대출 기구'(TALF)를 도입한게 대표적이다.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22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2분기 실업률이 30%에 달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인의 소득이 2조5천억 달러(3천200조 원)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연준이 세부 내용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중소기업 대출을 지원하기 위한 이른바 '메인스트리트 비즈니스 대출 프로그램'을 예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와 관련, 연준을 비롯한 금융규제 당국들도 전날 저녁 공동성명을 내고 코로나19 사태로 영향을 받은 차입자들을 '건설적으로' 처리해달라고 각 금융기관에 주문했다. 특히 신용리스크가 있는 대출에 대해 무조건 채무구조조정(TDR)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자제할 것을 요청했다.
ju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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