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정부는 24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2차 비상경제회의에서 50조원 가까운 기업 지원 및 증시 안정 대책을 발표했다. 우량·비우량 기업의 회사채와 기업어음(CP) 인수에 38조원, 증시 안정에 10조7천억원을 투입한다. 이는 애초 계획했던 27조원에서 규모를 대폭 키운 것이다. 이와 별도로 중소·중견 기업에 경영안정 자금 29조원도 수혈하기로 했다. 문 대통령은 1차 대책과 이번 대책을 합한 기업 구호 긴급자금은 모두 100조원 규모라고 했다. 지난주 50조원 규모 조치가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자영업자의 자금 질식에 숨통을 터주기 위한 것이라면 이번 대책은 중견·대기업과 자본시장의 '돈맥경화' 해소에 초점을 맞췄다. 팬데믹으로 매출이 끊기면서 자금난에 빠진 기업을 살려 일자리를 지키고, 증시를 부양함으로써 국가 위기로 비화할 수 있는 시스템 리스크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뜻이다. 시장은 정부 대책을 반겼다. 간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무제한 양적 완화 발표에 우리 정부 대책이 맞물리면서 오후 2시 현재 코스피 지수는 6% 넘게 급등했고, 원/달러 환율은 1.3% 하락해 1,250원대로 내려왔다. 대책의 약발을 극대화하려면 펀드 조성과 투입이 잡음 없이 속도감 있게 이뤄져야 한다. 돈을 빼려는 투자자들에게 일시적 자금난에 빠진 정상 기업은 무너지지 않고, 증시 추락 역시 좌시하지 않는다는 정부 의지를 확실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바이러스가 몰고 온 전대미문의 글로벌 셧다운이 언제 풀릴지 불투명하다는 점에서 정부의 이번 대책은 문제 해결의 시발점일 뿐이다. 시장 상황이나 기업의 유동성 위기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이미 극장은 텅텅 비고, 문 닫는 호텔과 면세점이 속출하는가 하면 항공사는 비행기 대부분의 운항을 중단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현상은 서비스업을 넘어 제조업 전반으로까지 확산할 수 있다. 정부는 특단의 대책이라고 하지만 자금 압박에 몰려 인공호흡기를 꽂아 달라고 아우성치는 기업들을 보면 산소통의 사이즈가 충분하다고 평가하긴 어렵다. 당장 다음 달 만기 도래하는 회사채만 6조5천억 원이고, 연말까지는 37조원에 달한다. 또 하나의 뇌관인 기업어음(CP)도 연말까지 79조원 정도의 만기도래가 예고됐다. 위기의 트리거가 단기채임을 감안할 때 CP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자금경색이 바이러스처럼 퍼지면서 기업의 연쇄 부도가 현실화할 수 있다. 증시안정펀드도 1천조 원이 넘는 코스피 시장 시가총액 규모를 고려할 때 연기금을 아우르는 좀 더 현실적 대책이 요구된다.
채권시장안정펀드나 증권시장안정펀드의 규모를 키우고 싶어도 금융기관을 쥐어짜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은행과 증권사의 위험 자산에 대한 건전성 기준이 걸림돌이다. 그렇다면 '라스트 리조트'(최종대부자)인 한국은행이 지금보다 행동반경을 넓혀 국책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의 유동성 여력을 획기적으로 키워주거나 직접 구원투수로 등판해야 한다. 미 연준은 기업어음은 물론 2008년 금융위기 때도 하지 않았던 회사채 직매입으로 유동성을 공급하기로 했다. 유럽중앙은행(ECB)도 7천500억유로(1천조 원) 규모의 '긴급 채권 매입 프로그램'으로 국채는 물론 기업어음까지 매입할 계획이다. 일본은행은 상장지수펀드(ETF)를 통해 증시에 12조엔(약 130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현행법상 회사채나 CP의 직매입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한국은행이 기축통화국 중앙은행처럼 맘껏 돈을 찍어낼 수는 없겠지만 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법적 테두리 내에서 기업과 시장에 산소 호흡기를 물릴 수 있는 우회로를 찾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정부가 지급보증을 해서라도 한국은행이 움직이도록 추동해야 한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공조해 적어도 코로나 사태 이전 문제가 없었던 투자등급 기업이 고용을 유지하면서 6개월 정도는 버틸 수 있게 해야 한다. 대기업이 무너지면 하청, 재하청 기업이 쓰러지고 대량 실업과 함께 금융 부실을 부를 수 있다. 위기에 몰린 기업 대책과 민생 구제는 별개가 아니며 선후가 있을 수 없다. 동시에 함께 안전망을 펼쳐 '죽음의 터널'을 빠져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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