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쓰고 "전후 경험한적 없는 국난…대책에 모든 힘"
코로나19 '긴급사태 선언' 거론하며 위기감 부각하기도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일본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급격히 확산하는 가운데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이를 정치적 구심력을 강화하는 재료로 삼는 분위기가 엿보인다.
일본 정부가 코로나19와 관련한 경고음을 높이는 것은 확진자 급증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로도 볼 수 있지만, 아베 정권의 비위 의혹에 대한 비판을 무마하고 지도력을 부각하려는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와 주요 각료는 지난달 31일 열린 경제재정 자문회의와 1일 열린 참의원 결산위원회에 마스크를 쓰고 출석했다.
코로나19가 확산하는 가운데 그간 아베 총리는 마스크를 착용한 모습을 노출하지 않았는데 공식회의에 비로소 마스크를 쓰고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일본의 '국민 개그맨'인 시무라 겐(70)이 코로나19에 감염돼 사망하면서 코로나19에 대한 불안이 확산한 가운데 행정 수반인 총리가 마스크를 쓰고 등장해 위험한 상황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아베 총리는 국회에서 긴급 사태 선언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그는 1일 참의원 결산위원회에서 긴급사태 선언에 앞서 국회에 보고하는 절차에 관해 "(긴급사태) 선언을 내놓는다는 것은 상당히 엄혹한 상황이며, 속도감이 필요하다는 것도 이해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최악을 상정하고 이미 여러 가지 가능성에 관해 준비하고 있다"며 "일본이 전후 경험한 적이 없는 국난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이 시점에서 선언을 내놓을 상황은 아니다"고 당장 긴급사태를 선언할 가능성과는 선을 긋기는 했으나 긴급사태 선언이 임박하고 있음을 예고한 셈이다.
아베 총리는 이날 국회에서 자신을 둘러싼 비판에 대응할 때도 코로나19를 활용했다.
그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가 전날 발매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아베 총리가 사학재단 비리 및 서류 조작에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만둬야 한다는 뜻을 표명한 것에 관한 야당 의원의 질의에 코로나19를 거론했다.
아사히(朝日)신문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지금 바야흐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책에 모든 힘을 다하고 있다"며 "여기서 내가 중간에 그만두는 것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실하게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는 입헌민주당 노다 구니요시(野田國義) 참의원 의원이 "아베 총리에게는 스승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인터뷰"라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은 데 대한 반응이다.
고이즈미 전 총리가 문제 삼은 것은 사학 비리 및 이에 대응하는 아베 총리의 태도인데 이에 관해 정면으로 답변하는 대신 코로나19를 방패로 삼은 양상이다.
아베 정권은 코로나19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현재는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호에서 확진자가 급증하던 올해 2월에는 일본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비판이 비등했지만, 최근에는 일본 유권자들이 정부 대응을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닛케이)과 TV도쿄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일본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에 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응답이 47%로 부정적으로 평가한다는 답변(44%)보다 많았다.
지난달 조사에서는 부정적 평가가 50%로 긍정적 평가보다 10% 포인트 높았는데 분위기가 달라진 것이다.
아베 총리는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을 연기해 일단 취소 위기를 모면한 만큼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주력하고 사학재단 비리 의혹이나 벚꽃을 보는 모임을 둘러싼 논란에서 여론의 관심을 돌리려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여론은 향후 일본 내 코로나19 확산 상황 등에 따라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 전문가들은 수도 도쿄도(東京都)에서 미국 뉴욕처럼 확진자가 폭증할 가능성이 있다며 의료 시스템 붕괴 가능성 등을 경고하고 있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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