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슨 총리, 확산 전 대응책 논의 위한 긴급안보회의 여러 차례 불참
보건장관은 코로나19 검사역량·개인보호장비 확보 실패
(런던=연합뉴스) 박대한 특파원 = 영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가 커지면서 책임론이 대두되고 있다.
영국 보건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영국의 코로나19 사망자는 1만7천337명으로 미국과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에 이어 세계에서 5번째로 많다.
누적 확진자 수 대비 누적 사망자 수 비율을 나타내는 치명률은 13%가 넘는다.
이같은 사망자는 병원 내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만 집계한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0일까지 요양원이나 호스피스 등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을 감안하면 실제 코로나19 사망자는 정부 발표보다 40%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같은 통계청 자료를 토대로 자체 분석한 결과 현재까지 영국의 코로나19 사망자가 4만1천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일간 가디언은 22일(현지시간) 영국이 코로나19 위협을 과소평가하면서 신속하게 대응하는 데 실패, 많은 사망자를 냈다고 지적했다.
가디언은 영국의 코로나19 위기가 책임을 묻는 단계에 도달했다면서, 보리스 존슨 총리와 각료들, 공무원들, 과학자들이 비판 대상에 올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왜 이들이 비판을 받고 있는지 상세히 소개했다.
◇ 보리스 존슨 총리
존슨 총리는 외무장관 시절부터 디테일에 약하며 업무를 대충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최근 일간 더타임스의 일요판 더선데이타임스는 현 정부가 코로나19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며, 존슨 총리가 지난 1~2월 코로나19와 관련해 긴급안보회의인 코브라(Cobra) 회의에 다섯차례나 불참했다고 보도했다.
이 기간 존슨 총리는 약혼녀와 함께 지방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존슨 총리가 코로나19 발병 초기 바이러스 위협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영국에서 이미 수십 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2월 초 한 병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사람들과 악수를 한 것은 바이러스에 대한 존슨 총리의 안이함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결국 존슨 총리는 주요국 정상 중 처음으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고, 이후 상태가 악화하면서 국정 공백까지 불러왔다.
◇ 맷 행콕 보건장관
행콕 보건장관은 코로나19 발발 이후 큰 압박을 받아왔다.
특히 코로나19 검사역량 및 개인보호장비(PPE) 부족은 의료진들을 코로나19 위협에 고스란히 노출했다.
행콕 장관은 기자회견 등을 통해 너무나 많은 호언장담을 내놨지만, 실제 제대로 지켜진 것은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이달 말까지 일일 10만건의 코로나19 검사역량 확충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같은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영국 정부는 현재 일 4만건 수준의 검사역량을 갖췄다고 밝혔지만, 실제 일 검사건수는 2만건 안팎에 불과하다.
일간 텔레그래프는 총리실 관계자를 인용해 이같은 호언장담이 행콕 장관 자신에게 해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내각에서조차 행콕 장관의 섣부른 발언을 비판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개인보호장비를 포함한 각종 의료장비 부족 문제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행콕 장관은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 산소호흡기 1만8천대가 필요하다고 밝혔지만, 현재 확보한 산소호흡기는 1만700대에 불과하다.
그는 기존 영국의 산소호흡기 제작업체의 생산대수 확대를 지원하기보다는 가전업체 다이슨과 같이 이름은 있지만 산소호흡기 제작경험이 없는 업체에 생산을 요청하는 데 집중했다.
지난 3일 행콕 장관은 영국 국내업체들이 개인보호장비를 만들고 있다고 자랑했고, 명품 의료업체인 버버리가 이와 관련한 도움을 주고 있다고 칭찬했다.
그러나 행콕 장관은 최근 의료용 가운 등이 부족하다고 실토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의료 일선 현장에는 개인보호장비가 부족하자 이를 재활용하라는 지침까지 내려졌다.
영국 기업들이 마스크, 개인의료장비 등을 제작해 정부에 제공할 수 있다고 수차례 제안했지만,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에 일부 업체는 확보한 장비를 오히려 해외로 보내고 있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 크리스 휘티 교수·패트릭 발란스 경
잉글랜드 최고의료책임자이자 영국 최고의학보좌관인 크리스 휘티 교수, 최고과학보좌관인 패트릭 발란스 경은 코로나 대응 초기 침착하고 차분한 태도로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영국의 코로나19 대응이 실패 쪽으로 기울면서 이들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존슨 총리를 비롯한 각료들은 그동안 과학적 조언에 따라 주요 결정을 내린다고 밝혀왔으며, 이중 핵심이 휘티 교수와 발란스 경, 그들이 이끄는 팀이기 때문이다.
발란스 경은 특히 '집단면역'(herd immunity) 발언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킨 인물이다.
그는 지난달 13일 한 방송에서 영국 인구의 60%가 코로나19에 감염돼야 집단면역이 생길 수 있으며, 지금까지의 정부 대응은 이같은 집단면역 확보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 목표는 바이러스를 전적으로 억제하는 게 아니라 정점 시기를 늦추는 데 있다"면서 "대부분의 (코로나19) 환자는 가벼운 증상을 보이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감염 후) 면역이 되면 일종의 집단면역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영국은 휴교 및 휴업, 대규모 스포츠 경기 중단 등의 조치가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늦었고, 이로 인해 인명 피해가 커졌다는 지적이다.
발란스 경은 독일이 코로나19 검사에 있어 성공했다고 평가하면서, 영국이 검사역량을 확충해야 한다고 뒤늦게 인정하기도 했다.
◇ 마크 세드윌 내각장관과 공무원
내각장관은 정부 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마크 세드윌 내각장관은 국가안보보좌관이며, 공무원들의 수장이기도 하다.
더타임스 등에 따르면 세드윌 장관은 그러나 지난 2월 코로나19 초기 대응 과정에서 통제권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익명의 취재원을 인용해 세드윌 장관이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 존슨 총리, 총리 보좌관들과 사이가 틀어졌다고 보도했다.
◇ 중국
코로나19 대응 실패의 원인을 내부가 아닌 영국 외부에서 찾으려는 움직임도 있다.
특히 코로나19 발병 근원지로 추정되는 중국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영국 국제관계 싱크탱크인 헨리 잭슨 소사이어티(Henry Jackson Society) 의뢰로 지난주 진행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중 74%는 중국이 코로나19 확산에 비난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체의 71%는 중국 정부가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국제법을 위반한 사실이 명백해지면 중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표현하며 중국의 책임론을 제기한 이후 영국 각료들도 중국이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사이 코로나19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마이클 고브 국무조정실장은 영국의 코로나19 검사역량 부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중국에 책임을 돌렸다.
그는 "중국에서의 보도를 보면 코로나19의 성질과 전염성, 발병 규모가 명확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영국 과학자들은 중국의 코로나19 사망자가 발표된 것보다 40배 많을 수도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 세계보건기구(WHO)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확산 과정에서의 WHO의 잘못된 대응, 중국 편향성 등을 계속해서 비판해왔다.
이를 이유로 WHO에 대한 자금지원 중단 결정을 내렸다.
영국 총리실 역시 코로나19와 관련한 WHO 대응에 개선의 여지가 있었다며 비판에 동참했다.
다만 영국은 미국과 달리 WHO에 대한 자금 지원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pdhis9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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