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국 병원만으로도 벅차…WP "상대적 방치는 사실"
창궐 때문에 사각지대 노출…"요양원 직원도 장비·교육 필요"
(서울=연합뉴스) 현혜란 기자 = 유럽에서 나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망자 절반은 요양원과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각국 정부가 크게 신경 쓰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쏟아져 나오는 일부 유럽 국가들은 병원을 통제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병원 밖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사망자는 검사조차 하지 못해 정확한 실태 파악도 불가능한 실정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유럽 담당 국장 한스 클루게는 23일(현지시간) "유럽 지역 국가들의 추산에 따르면 코로나19 사망자 절반이 장기 요양 시설에서 나왔다"며 "상상할 수 없는 인간의 비극"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유럽 대륙을 강타한 이후 나이가 많거나, 기저질환을 앓고 있어 바이러스에 가장 취약한 이들이 모여있는 장기 요양 시설은 상대적으로 방치돼 왔던 게 사실이라고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의 한 요양원에서는 지난달 수십명이 침대 위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이탈리아 밀라노의 한 요양원에서도 최근 한 달 사이 110명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져 당국이 수사에 착수했다.
영국 맷 행콕 보건장관은 22일 의회에 코로나19 사망자의 20%가 요양원에서 나왔을 수 있다고 보고했으나, 영국 내 일부 전문가들은 그 비율이 40%에 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벨기에는 의심 환자까지 포함해 코로나19 사망자 통계를 집계하고 있는데 전체 사망자 6천450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장기 요양 시설에서 나왔다. 여기서 의심 환자란 코로나19 증상은 있었지만, 검사를 받지 못한 이들이다.
독일에서도 사망한 코로나19 환자 5천여명 중 3분의 1가량이 요양 시설에서 나왔다고 한국의 질병관리본부 격인 로베르트코흐연구소(RKI)가 밝힌 바 있다.
클루게 국장은 이날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이 그간 우리가 간과해왔던 구석까지 조명을 비췄다며 이제는 각국 정부가 장기요양 시설에도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클루게 국장은 의료진에 우선하여 개인 보호장비를 공급하고 있듯이 요양원 직원들에게도 충분한 장비를 제공해야 하며, 입소자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등을 교육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코로나19 확산을 막겠다며 각국 정부가 장기 요양 시설에 가족, 친지 등 지인의 방문을 금지한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이러한 조치는 입소자들에게 정신적으로 더 큰 부담을 안길 수 있다고 환기했다.
프랑스의 한 요양원에 사는 잔 폴(96)이 방송 인터뷰에서 가족을 만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웃과도 대화를 나눌 수 없을 정도로 교류가 끊기자 식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 소식을 접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트위터에 "폴의 슬픔이 우리 모두를 압도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방문을 허가하겠다"며 요양원이 안전대책을 마련한다는 전제로 가족 2명의 방문을 허용키로 했다.
run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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