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전가의 보도' 국방물자법, 한국전쟁 때 제정된 배경은

입력 2020-05-02 01:55  

트럼프 '전가의 보도' 국방물자법, 한국전쟁 때 제정된 배경은
장비부실 심각해 전쟁 수행력 우려 제기…2차대전때 관련법 기반해 제정
기업 반발로 소송에서 정부 패소하기도…"만병통치약은 아냐"

(워싱턴=연합뉴스) 류지복 특파원 = 한국전쟁 때 만들어진 미국의 국방물자생산법(DPA)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의료용품 등 미국의 물자난 해소를 위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수단으로 적극 활용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인공호흡기, 마스크, 면봉 등 의료용품 공급 확대를 위해 DPA상 권한을 발동하거나 발동 엄포를 놨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에는 공급난 우려가 제기된 육류가공업체가 생산을 이어가도록 하는 데도 이 법을 발동했다.



대통령이 국방, 안보 등을 위해 민간 기업에 주요 물품의 생산을 촉진하고 확대할 광범위한 권한을 인정한 이 법은 1950년 9월 한국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제정됐다.
오하이오주립대 강사인 재커리 매투셰키가 1일 워싱턴포스트(WP)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DPA는 미군이 한국전 참전 초기에 겪은 '군수물자 악몽'에서 비롯됐다.
당시 미8군단장인 월턴 워커 장군은 군대의 40%만이 전쟁 준비가 돼 있다고 보고했다.
또 장비는 오래되고 손질되지 않았다며 미8군이 보유한 1만4천 대의 지프 중 4천 대가 작동하지 않았고, 약 1만3천 대의 2.5t 트럭 중 절반도 안 되는 트럭만이 운행 가능한 상태라고 말했다.
북한의 남하를 막기 위한 미군의 첫 부대인 '스미스 특수부대'의 1950년 7월 임무는 부분적으로 장비 문제 때문에 무너졌다고 매투셰키는 평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워싱턴의 지도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1년과 1942년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물가와 임금을 책정함으로써 경제에 개입할 권한을 부여한 전쟁권한법(WPA)에 눈을 돌렸다.
그 결과로 1950년 9월 전쟁 수행에 필요한 물자를 능률적으로 생산할 수 있도록 연방정부의 경제 개입 권한을 확대하는 DPA가 탄생했다.



그러나 집단 희생을 요구한 WPA는 2차 대전 후 공격을 받았고 미국의 1946년 중간 선거에서 당시 집권당이던 민주당이 대패하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DPA 제정이 일종의 도박이었다고 매투셰키는 썼다.
실제로 한국전쟁이 예상보다 길어지자 기업과 노동자들은 정부의 임금과 물가 통제에 대한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1952년에 이런 불만이 폭발했다.
철강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기업이 정부의 가격 통제를 이유로 이를 피하려 하면서 마찰이 불거진 것이다.
이에 철강 노조가 파업을 위협하자 당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DPA 조항을 근거로 제철소를 압류해 버렸다.
철강업체들은 트루먼 대통령이 의회 동의를 거치지 않았다며 소송을 냈고, 연방 대법원은 6대 3으로 철강업체의 손을 들어줬다.
기업이 제철소 통제권을 다시 얻었지만 곧이어 노동자 파업이 시작됐고, 미국 역사상 최장인 53일간 철강 노동자 파업이 이어졌다.
트루먼 대통령이 양측을 백악관으로 불러 설득과 조정에 관한 권한을 행사한 뒤에야 파업이 끝났다.
매투셰키는 "DPA는 만병통치약이 아니고 권한이 무한한 것도 아니다"라며 "좋든 나쁘든 긴급한 순간일 때도 미국의 시스템에서 이 법을 활용하는 대통령의 능력은 제한돼 있다. 특히 대통령이 시민이나 의회의 명백한 지지를 받지 못할 때는 더욱더 그렇다"고 과도한 사용을 경계했다.
jbryo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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