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세브란스병원서 쇠붙이 제거 수술 예정
(카이로=연합뉴스) 노재현 특파원 = '남수단에서 수단 거쳐 이집트, 그리고 이번에는 한국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이집트에 발이 묶였던 한국인 130여명이 5일 오후 비행기를 타고 귀국길에 오르는데 특별한 외국인이 탑승자에 포함됐다.
아프리카 남수단의 여자 어린이 글로리아 간디(4)와 아버지 간디(32)가 한국인들과 10시간이 넘는 여정을 함께 한다.
글로리아는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몸에 들어간 쇠붙이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해맑은 얼굴의 아프리카 어린이가 공교롭게도 한국 어린이날인 5월 5일 희망을 품고 한국으로 향하는 것이다.
글로리아의 한국행이 결정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글로리아는 작년 8월 말 남수단 수도 주바의 집 앞에서 놀다가 동그란 쇠붙이를 삼켰다.
당시 글로리아의 아버지는 기침하는 딸에게 감기약을 먹였는데 1주 정도 지나도 낫지 않자 병원을 찾았다.
글로리아의 가슴 가까운 부위에서 엑스레이로 확인된 쇠붙이 크기는 한국의 500원짜리 동전보다 컸다.
그러나 남수단에서는 내시경으로 쇠붙이를 꺼내는 기구를 찾기 힘들고 수술도 어려웠다고 한다.
결국 작년 9월 초 글로리아와 아버지는 남수단보다 의료 여건이 그나마 나은 수단으로 비행기를 타고 갔다.
글로리아의 아버지는 노점상으로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단행 비행기를 타는 데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부녀는 수단 수도 하르툼에서 글로리아의 옆구리를 절개하는 수술을 받았지만, 쇠붙이를 꺼내는 데 실패했고 남은 돈이 거의 없었다.
눈앞이 깜깜해지는 절망스러운 상황에도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았다.
작년 11월 수단에서 버스를 타고 다시 이집트로 이동하면서 두 번째로 국경을 넘었다.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는 글로리아의 친척들이 살고 있는 데다 이집트는 수단이나 남수단보다 의료 환경이 좋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카이로의 친척 집에서 지내던 부녀가 올해 1월 말 카이로 내 수단인들을 돕던 한 한국인 선교사를 우연히 알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이 선교사는 지난 2월 글로리아 부녀를 만나 카이로의 병원을 찾았는데 글로리아의 상태는 많이 나빠져 있었다.
심장과 폐 사이에서 확인된 쇠붙이가 부식하면서 염증이 생겼고 여러 장기가 손상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다.
글로리아는 등과 옆구리에서 통증을 호소했고 숨소리는 거칠어졌다.
수술이 시급했지만 그 비용이 2만5천 달러(약 3천만원) 정도 됐기 때문에 부녀가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러다 딱한 사연을 접한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이 항공료와 수술 비용, 한국 체류비를 지원하겠다고 나서면서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 이후 과정도 쉽지 않았다.
글로리아는 당초 3월 말 한국으로 가려고 했지만 코로나19로 이집트를 오가는 국제선 항공편 운항이 갑자기 중단되면서 출국이 계속 미뤄져 왔다.
글로리아의 아버지 간디는 5일 전세기 탑승을 앞두고 카이로 국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국으로 가게 돼 정말 행복하다"라며 "한국 정부와 글로리아의 수술을 도와주기로 한 병원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 한국에 입국하는 사람은 모두 2주간 격리 생활을 해야 하는데 수술이 늦어질 수 있다는 점이 걱정이다.
글로리아를 도운 선교사는 "아픔을 잘 견뎌온 글로리아가 대견하고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이 정말 감사하다"며 "방역 당국의 결정을 따라야 하는데, 글로리아의 상태가 좋지 않은 만큼 수술을 조금이라도 빨리하는 방법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noj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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