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기회로…일본 수출 규제 뒤 소부장 경쟁력 강화

입력 2020-05-13 17:00  

위기를 기회로…일본 수출 규제 뒤 소부장 경쟁력 강화
3대 규제 품목 실질적 안정 달성…"벽에 과감하게 부딪혀 자신감 얻어"
불확실성 상존 속 경쟁력 더 키운다…유턴 강화·특화단지 조성


(서울=연합뉴스) 고은지 기자 = 정부가 소재·부품·장비 산업 경쟁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게 된 계기는 지난해 7월 이뤄진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 조치이다.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인 고순도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의 한국 수출을 제한하면서 우리나라의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대외의존도가 높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정부는 국내 소재·부품·장비의 대외의존도를 낮추겠다는 의지를 표명했고, 민관이 합심해 3개 규제 품목을 포함한 100대 소재·부품·장비의 수입선 다변화와 국산화에 총력을 다한 결과 구체적인 성과를 냈다.
다만 일본의 수출규제가 10개월째 이어지는 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겹치면서 기업이 느끼는 불확실성은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상황이다.


◇ 3대 규제 품목 실질적 안정화 달성…"과감한 도전으로 자신감"
정부는 13일 개최한 제4차 소재·부품·장비 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을 마련해 신속하게 추진한 결과 수출규제 3대 품목을 중심으로 공급 안정화에 뚜렷하게 큰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액체 불화수소(불산액), 극자외선(EUV)용 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대 품목은 미국, 중국, 유럽산 제품을 대체 투입하고 미국 듀폰사 투자 유치, 국내 화학기업 솔브레인[036830] 생산 확대 등 다각적 방안을 동원해 실질적 공급 안정화를 달성했다.
품목별로 보면 불산액은 솔브레인이 기존보다 2배 이상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신·증설하는 등 국내 수요에 충분한 공급 능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미국, 중국 등의 제품에 대한 시험을 마치고 일부 제품을 실제 생산에 투입했다.
EUV 레지스트는 유럽산으로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동시에 듀폰으로부터 생산 시설 국내 투자를 유치하는 등 다각적 방식의 공급 기반을 확보했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코오롱인더스트리, SKC[011790]에서 자체 기술을 확보해 수요기업과 시제품을 시험 중에 있고, 일부는 수출까지 이뤄졌다.
100대 핵심 품목은 재고량을 주 단위에서 월 단위로, 1개월에서 3개월 내외로 점진적으로 확충해 재고 보유 수준을 기존 대비 2∼3배로 확대했다.
특히 필름 소재 등 76개 품목은 비슷한 품질을 보유한 미국·유럽산을 집중적으로 시험해 대체 수입선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이와 함께 13건의 인수합병(M&A)과 7천340억원 규모의 투자 프로젝트를 통해 48개 품목은 국내 생산 역량을 대폭 확충했다.
정부 관계자는 "민관이 합심해 소재·부품·장비 공급 안정화를 진전시키고 도전 의식과 자신감을 갖게 됐다"며 "그간 시도조차 어려웠던 벽에 과감히 도전해 '막상 해보니 되더라'라는 경험을 얻었다"고 평가했다.


◇ 일본 수출규제·코로나19 불확실성 여전…"국내 기반 다진다"
정부와 민간기업의 노력으로 이제는 일본산 소재·부품·장비의 수입 없이도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이 상당 부분 조성됐다.
일본 수출규제 이후에도 일본 정부의 대한국 수출허가는 계속 이뤄지고 있고, 국내 생산에 미치는 영향도 거의 없다.
하지만 일본의 수출규제가 계속되는 이상 불확실성이 완전히 제거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본이 정치 상황에 따라 수출을 다시 조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 100대 소재·부품·장비 품목의 수급 안정이 어느 정도 달성됐다고 해도 개별 기업, 품목별로 보면 일본산 제품에 대한 의존도가 여전히 높을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12일 일본 측에 수출규제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4차 경쟁력위원회 모두발언에서 "이달 말까지 수출 규제 해결방안을 제시하라"라고 거듭 촉구했다.
우리 측 요구에 대해 일본은 "적절한 수출 관리 차원에서 수시로 수출관리를 평가해 나간다"며 확답을 피했다.
대외 의존도 문제는 비단 일본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는 자국 우선주의가 확산하고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 간 무역 분쟁이 격화하면서 중국 등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완화하려는 각국의 움직임이 잰걸음을 내고 있다.
저렴한 인건비 등 비용 절감에 대한 필요성보다 수요기업 연계, 수급 위험 관리 등이 더 절실해지면서 글로벌 기업들 역시 자국 내 생산을 강화하는 추세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국내 공급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며 해외에 있는 한국기업의 '유턴'(리쇼어링, 제조업체의 국내 귀환)이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다.
정부가 4차 경쟁력위원회에서 소재·부품·장비 특화단지를 구축하기로 결정한 것도 국내 공급망의 안정성을 강화하기 위한 생산기반을 확충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정부는 소재·부품·장비 집적화 정도가 높은 기존 산업단지와 집적화를 위해 신규 조성(계획) 중인 산단을 중심으로 올해 1∼2개의 소재·부품·장비 특화단지를 시범 지정하고 범부처 차원의 강력한 패키지 지원을 하기로 했다.
홍 부총리는 "주요국의 봉쇄조치, 이동제한으로 글로벌가치사슬(GVC)이 크게 훼손된 상황에서 소위 'K-소부장'은 'K-방역' 못지않은 중요한 당면과제가 됐다"며 "리쇼어링 등에 속도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eu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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