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 인터뷰서 "코로나 사태, 높은 수위의 불평등과 불평등의 폭력성 드러내"
르몽드 기고문에선 정부 주도로 보건·환경 등 '새로운 분야' 투자 강조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부의 불평등을 다룬 베스트셀러 도서 '21세기 자본'으로 유명한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12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더 공정하고 공평한 사회가 도래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피케티는 이날 영국 일간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이번 팬데믹으로 "최소한 보건 분야에 대한 공공 투자의 당위성은 강화할 것"이라며 이같이 진단했다.
그는 농노제도의 종말이 14세기 흑사병의 결과물이라는 이론을 언급하며 당시 인구가 반토막 나며 노동력이 귀해지자 이들에 대한 더 나은 인권과 지위가 보장되기 시작한 것처럼 이번에도 이런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해석했다.
그는 그러나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자신이 평소 주장하던 '참여주의적 사회주의'(participatory socialism)로 나아가는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아직은 말하기 이르다"고 답변을 유보했다.
이런 유행병이 상반된 영향을 미칠 수도 있어서다.
그는 "역사를 보면 팬데믹이 외국인 혐오와 자국중심주의를 초래하는 경우도 있다"며 "프랑스의 극우 정치인인 마린 르펜은 유럽연합(EU) 내 자유로운 이동을 너무 빨리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데 특히 유럽이 다른 대륙에 비해 사망자가 상대적으로 많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나 르펜의 논리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특히 이번 사태가 높은 수위의 불평등을 여실히 드러냈다고 강조했다.
부국과 빈국의 차이 없이 모든 국가의 사회적 그룹이 똑같은 타격을 입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돼서다.
또한 그는 "우리는 이 불평등의 폭력성을 마주하게 됐다"며 "큰 아파트에 봉쇄되는 것과 노숙자인데 봉쇄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덧붙였다.
다만 이런 불평등성은 한 세기 전에 비하면 훨씬 나아진 것이라고 피케티는 강조했다. 그는 "어떤 면에선 이것이 내 메시지"라며 "정치적, 지적 사회운동으로 사회보장제도와 진보적인 조세제도가 건설돼 발전이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피케티는 한 세기 전과 비교하면 불평등이 개선됐으나, 40년 전인 1980년대에 비하면 불평등성이 더 커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위기에 대한 올바른 대응은 북반구의 사회국가를 되살리고 남반구에선 개발을 가속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의 자유로운 자본 순환 체제는 1980~1990년대 부국, 특히 유럽의 영향 아래에 만들어진 것으로, 재벌들이 과세 회피를 조장하고 빈국이 공정한 조세제도를 개발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새로운 사회 국가'는 더 공정한 조세 제도를 요구하고, 부유한 기업도 이 제도 안으로 들여올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피케티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라 급속도로 불어나는 공공부채로 정부가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며 부유층에 대한 과세를 하나의 선택지로 언급했다.
그는 "19세기 영국은 나폴레옹 시대의 채무를 갚기 위해 중산층 이하 계층에 과세했는데 그때는 부유한 사람만 투표권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세계 2차대전 후 독일과 영국은 일시적으로 부유층에 과세했는데 그것이 더 나은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유럽중앙은행(ECB)이 회원국의 채무를 더 많이 져야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19개 회원국)을 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피케티는 이날 프랑스 르몽드에 실린 '녹색 자금의 시대'라는 기고문에서 ECB가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하고자 새로운 자산 매입 프로그램을 가동한 것을 언급하며 EU가 최근 두달 사이 7천억 유로라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기로 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봉쇄를 새롭게 시작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며 정부가 경제 성장과 고용 회복을 위해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이는 정부 주도로 경제 회복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미로, 그는 이 과정에서 기존의 우선순위에 분명한 변화를 주고, 금융 및 재정 분야에서 금기시됐던 것에 도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회적이고 환경적인 목표 달성과 실물 경제의 이득을 위해야 한다"며 보건, 혁신, 환경 등을 투자가 이뤄져야 할 새로운 분야로 지목했다.
아울러 탄소를 생성하는 활동을 점진적이고 영속적으로 축소하고, 물질적인 측면에선 병원과 학교, 대학, 건물 열효율 개선이, 커뮤니티 봉사 분야에서는 대규모 일자리 창출과 임금 상승이 각각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경기 회복을 위해 시장에 투입하는 자금이 증시 부양이 아닌 녹색·사회 경제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 사용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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