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5년까지 장기재정전망' 결과 토대로 8월말까지 도입 여부·내용 결정
(세종=연합뉴스) 정책팀 = 정부가 올 하반기에 한국적 상황에 맞는 유연한 재정준칙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재정준칙은 재정수지, 재정지출, 국가채무 등 재정 총량에 일정한 목표 수치를 부여하고 이를 준수하도록 하는 재정 운용 방식이다. 다른 나라는 헌법·법률 또는 정부 내부 규칙·규정 등의 형태로 도입하고 있다.
7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8월 말까지 2065년까지의 장기재정전망 결과를 바탕으로 재정준칙 도입을 검토할 계획이다.
올해 들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세 차례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면서 3차 추경안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43.5%)과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비율(5.8%)이 역대 최고로 치솟자 재정준칙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3차 추경안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올해 국가채무 증가 규모는 사상 최대 수준인 100조원에 달한다.
감사원도 최근 '중장기 국가재정 운용 및 관리실태' 감사보고서를 공개하며 정부를 향해 국가 재정의 중장기적인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해 재정준칙 도입을 검토하라고 제언했다.
정부는 2065년까지의 장기재정전망 결과를 토대로 2020∼2024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연계해 우리 재정·경제 여건에 맞는 재정준칙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으로 알려졌다. 특히 수지나 채무 등에 한정된 '수량적 재정준칙'보다는 수입이나 지출 등에서 다양한 준칙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방식도 법제화 외에 주무 부처의 관리 수준으로 다루는 방안도 함께 살펴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재정준칙 도입과 관련해 여러 대안과 외국 사례를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재정준칙 도입에 앞서 급격한 고령인구 증가에 따른 재정 압박 등에 대응하기 위해 작년 8월부터 오는 2065년까지의 장기재정전망 작업을 진행해 왔으며 이 결과를 9월 초 국회 본예산 제출 때 함께 낼 예정이다. 새 장기재정전망에는 작년 3월 발표된 2017∼2067년 장래인구특별추계 결과와 낮아진 거시경제지표 전망이 반영되므로 국가채무 비율 전망치가 더욱 상승하는 것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정부는 지난 2016년 GDP 대비 국가채무를 45% 이내에서,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GDP의 3% 이내에서 관리하는 방안을 법제화하는 재정건전화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으나 이후 논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은 채 법안이 폐기됐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1985년부터 2015년까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재정준칙을 도입한 국가는 영국, 독일, 스웨덴 등 선진국 29개국을 비롯해 33개의 개발도상국과 23개의 저소득 국가까지 총 85개국에 이른다.
감사원 감사보고서는 IMF 자료를 인용해 재정준칙으로 가장 많은 국가가 채무비율을, 그 다음으로는 재정수지를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채무비율을 재정준칙으로 삼고 있는 나라는 독일, 영국, 스페인, 체코 등이다. 이 방식은 단순하고 감독이 용이해 통제 가능성이 높은 장점이 있는 반면, 경기 안정화 기능이 미약하고 최적의 부채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재정수지를 재정준칙으로 삼고 있는 나라는 스위스, 독일, 이탈리아 등이다. 이 방식은 간단하고 이해하기 쉬운 점이 장점으로 꼽히지만, 역시 경기 안정화 기능이 미약하고 수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회계상 조작이 가능하다는 단점이 거론된다.
이외 스웨덴, 미국, 폴란드, 네덜란드 등은 지출 항목에 대해 재정 준칙을 도입했다. 이 방식은 단순하고 감독이 용이해 통제 가능성이 높은 편이지만, 재정의 지속가능성과 연관성이 떨어지고, 조세지출 등을 통한 우회 위험이 존재한다는 단점이 있다.
이와 관련, 우리나라는 대외의존도가 높아 경기 변동성에 대응할 필요가 크기 때문에 재정준칙 도입 유형과 법제화 여부 등을 선택할 때 이런 점을 반영해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내용적으로 예외를 두거나, 유연한 준칙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감사원도 최근 낸 감사보고서에서 "최근의 세계적 경제위기와 같은 상황에서 재정준칙의 경직적인 운영은 오히려 경제 위기를 증폭시키거나 확대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국회예산정책처가 연구용역을 진행한 '국가재정운용계획의 운영 현황과 제도개선방안 연구' 보고서에서도 "재정준칙은 국가별로 처한 경제상황, 정치구조 등에 따라 어느 시점에 어떤 유형을 도입할 것인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면서 "우리나라의 경우 재정지출 중 지출관리가 필요한 재량지출부터 고정 방식과 함께 재정준칙으로 도입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한편, 정부가 재정준칙 도입을 검토하는 것과 별도로 갓 개원한 21대 국회에서도 야당을 중심으로 관련 법안 발의가 이어지고 있어 재정준칙 도입을 둘러싼 논의가 시작될 전망이다.
야당에서는 미래통합당 추경호 의원이 국가채무비율을 45% 이하, 관리재정수지 적자비율은 3% 이하로 유지하도록 하는 내용의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전쟁·재난·대량실업 등 사유로 국가채무비율이 45%를 초과할 경우 세계잉여금을 국가채무상환에 우선 지출하고 모두 상환하지 못할 경우 5년간 국가채무를 감축하기 위한 계획 수립을 의무화하도록 했다.
같은 당 류성걸 의원도 국가채무비율이 45%를 초과할 경우 세계잉여금을 국가채무 원리금을 상환하는 데 모두 사용하도록 하고, 전쟁·대규모 재난·대내외 재정여건의 중대 변화가 발생한 경우를 제외하고 관리재정수지 적자비율을 2% 이하로 유지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재정준칙을 법제화하는 내용의 재정건전화법안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yjkim8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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