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잉 737맥스 결함·코로나 이슈는 제주항공 부담 명시…인수 여전히 난기류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제주항공[089590]의 이스타항공 인수 작업이 체불 임금 벽에 가로막혀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가운데 당초 양사가 맺은 계약서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피해에 대해 문제 삼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0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제주항공이 지난 3월2일 이스타항공 최대주주인 이스타홀딩스와 체결한 주식매매계약(SPA) 상에 코로나19로 인한 추가 피해 상황에 대해 문제 삼지 않는다는 내용이 명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양사의 사정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는 "계약서에 보잉 737맥스 결함이나 코로나 이슈 등으로 생기는 문제에 대해 인수자(제주항공)가 부담한다는 조항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양사가 SPA를 맺을 당시는 이미 코로나19 여파로 항공업계가 직격탄을 맞은 상태였다. 실제로 코로나19로 여객 수요가 급감하면서 항공편을 축소하는 과정에서 이미 양사가 일부 항공편을 공동 운항하기도 했다.
양사도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 당초 예정보다 150억원 적은 545억원으로 가격을 조정해 인수 계약을 성사시켰다.
이미 제주항공이 수차례 이스타항공에 대한 실사를 진행한 만큼 자금 부족으로 인해 분쟁이 생기는 부분에 대해서도 문제 삼지 않는다는 내용의 세부 조항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양측 모두 공식적으로는 "계약서상의 세부 내용은 비밀 유지 의무에 따라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SPA 체결 이후 업황이 한층 악화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며 이스타항공이 국내선과 국제선을 모두 '셧다운'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고, 저비용항공사(LCC) 업계 1위인 제주항공 역시 노선 상당수를 감축하고 전 직원 휴직, 자산 매각 등에 나설 정도로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
이스타항공은 이미 2월부터 임직원의 임금을 일부만 지급했고 4월 들어서부터는 아예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체불 임금 규모가 250억원에 달하며 인수 작업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상황이다.
제주항공은 지난달 초 이스타항공 측에 체불 임금 해소를 요구했지만 이스타항공 측은 이는 사실상 계약 조건 변경과도 같다며 곤란한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이스타항공 관계자는 "이미 SPA 체결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체불 임금은 제주항공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내용을 확인했다"며 "매각 대금 545억원 중에 전환사채(CB), 세금, 각종 비용 등을 고려하면 대주주가 가져가는 돈은 제로(0)에 가깝기 때문에 대금을 더 깎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반면 제주항공 측은 "2월 이후 지속한 임금 체불을 해소하기 위해 현 경영진과 대주주가 책임감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 셧다운 등의 상황에서도 "인수 절차가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경영에 관여할 수 있는 법적인 자격이 없다"며 인수 후 경영 정상화에 나선다는 방침을 고수해왔다.
이처럼 양측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애꿎은 직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최근 60여명이 희망 퇴직했고, 회사의 인력 구조조정 방침에 따라 62명이 정리해고 명단에 오른 상태다.
이스타항공에 대한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은 사실상 막혀 있는 상태다. 정부는 인수 작업이 진행 중인 만큼 인수 주체인 제주항공을 통해 이스타항공을 지원하겠다며 1천700억원을 책정해놨다.
이스타항공 측은 "회사나 대주주는 자금 여력이 없는 만큼 다른 항공사처럼 별도 지원을 받거나 제주항공이 추가 지원을 더 받아 체불 임금을 해소하는 방법밖에 없어 보인다"며 정부의 추가 지원을 호소하고 있지만, 이 역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이스타항공은 서울남부고용노동지청의 시정 지시에 따른 체불 임금 지급 시한(9일)을 결국 넘겨 자칫 검찰에 형사 고발될 수도 있는 처지에 놓였다.
HDC현대산업개발[294870]이 아시아나항공[020560] 채권단에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원점에서 재검토하자는 입장을 제시하며 일각에서 인수 포기 수순을 밟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제주항공 역시 출구 전략을 짜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여파와 업황 회복 등을 고려해 최소 3천억원 이상이 더 투입돼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제주항공 내부에서는 계약금을 포기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할 수 있다"며 "이스타항공 입장에서도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지부진 이어지는 것보다는 인수가 무산돼 아예 정부의 지원을 기대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제주항공은 공식적으로는 "이스타항공 인수 의지에 변함이 없다"는 입장 외에는 말을 아끼고 있다.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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