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초 총파업·반전운동·WTO항의시위 등 시위로 점철된 역사
급격한 경제성장에 따른 빈부격차·집값폭등이 현 시위 기저에
트럼프 "극좌 무장단체가 도시 점령했다" 연일 비난 세례
(서울=연합뉴스) 이영섭 기자 = 미국의 인종차별 항의 시위가 대부분 지역에서 평화 시위로 자리잡은 가운데, 워싱턴주 시애틀에서는 시위대가 도심을 점거하는 등 혼란이 가라앉지 않는 모양새다.
시애틀에서 유독 거센 시위가 이어지는 모습은 미국인들에게 낯선 것이 아니다.
14일(현지시간) AP통신은 1851년 시애틀이 탄생한 이후 대규모 시위는 이 도시의 일부였을 정도로 유명한 시위가 자주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통신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시애틀 시위대를 '무정부주의자 점령군'이라고 부르는데, 이곳 시위들은 100년도 넘게 비슷하게 묘사돼왔다"고 설명했다.
'시위 허브'로서 시애틀의 명성은 1919년 노동자 총파업 때 처음 확립됐다.
수만 명의 노동자가 임금 및 근로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일을 중단한 이 사건은 미국 최초의 총파업이었다.
시애틀 역사학자인 크누트 버저는 이 총파업으로 인해 시애틀은 수십년간 '불안정'과 동일한 것으로 여겨졌다고 설명했다.
이후 1934년에는 서부해안 부두노동자들의 파업 거점이었으며, 1960년대에는 반전운동과 환경운동 등이 거세게 일어나기도 했다.
특히 1970∼1971년 베트남전 반대 시위를 벌인 '시애틀해방전선'(SLF)은 당시 미 전역에서 가장 유명한 반전 단체였다.
1999년 진행된 세계무역기구(WTO) 및 경제자유화 반대 시위는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당시 시애틀에서 WTO 총회가 진행되는 동안 회의장 밖에선 주민 약 5만 명이 자본주의 허점 및 노동자 착취 등에 항의했다. 일부는 상점을 약탈하는 등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이 시위로 수백명이 체포되고 당시 시애틀시장은 시내에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WTO 반대 시위 이후 시애틀은 경제가 크게 성장했지만, 주택비용 폭증과 빈부격차 심화 등 부작용을 낳았다고 AP는 설명했다.
버저는 "이 격차 때문에 사회 정의와 공정 등 이슈가 부각돼왔다"며 이런 문제들이 현재 시위의 기저에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달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 이후 거리에 나선 시위대는 지난 8일 밤부터 도심의 관광 명소인 '캐피톨 힐' 지역을 점거했다.
시위대는 무력 사용 금지, 경찰의 잔혹 행위로 피해를 본 이들에 대한 배상금 지급뿐 아니라 시 경찰서 폐지, 교도소 제거 등 과격한 요구도 내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와 경찰 당국은 시위대와의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2일 트윗으로 시애틀 시장을 비난하며 "테러리스트들은 우리의 도시를 불태우고 약탈한다"며 점령을 끝내기 위해 연방군 투입까지 시사했다.
그는 이날도 "안티파(antifa·반파시스트)와 극좌 무장단체가 도시를 점령한 것에 대해 '아무것도 안 하는 민주당' 지도부는 한마디도 안 하면서, 한 주나 도시 및 성실한 시민들을 폐쇄하는 데 대해선 완전히 급진적으로 변한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young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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