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결부터 시행까지 14시간 동안 법안 세부내용 '깜깜이'
홍콩 주권반환·중국공산당 창립 기념일 전날 전격 발효
(베이징=연합뉴스) 김윤구 특파원 = 중국이 홍콩의 인권과 자유를 침해할 것이라는 비판을 받는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을 일사천리로 통과시켜 전격 시행에 들어가기까지는 긴박한 순간들이 이어졌다.
중국 최고 입법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의 첫 심의부터 투표까지 12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통상 6개월이 걸리는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사흘간 열린 전인대 상무위원회 20차 회의의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달 30일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 중국 안팎의 이목이 쏠렸다.
홍콩보안법이 단 2차례 심의 만에 이날 표결로 통과될 것이라는 전망이 파다하게 퍼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첫 소식은 미국에서 먼저 나왔다. 전인대 표결을 몇시간 앞두고 미국은 이미 경고했던 홍콩 특별지위 박탈 카드를 결국 꺼냈다.
미 상무부는 홍콩보안법 시행으로 민감한 미국 기술이 중국 인민해방군이나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부로 넘어갈 우려가 커졌다면서 홍콩에 대한 군사장비 수출을 중지하고 첨단기술 제품에 대한 접근을 제한했다. 이어 추가 조치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의 이런 '막판 제동 걸기'도 중국의 홍콩보안법 제정을 막지는 못했다.
홍콩 언론을 통해 오전 9시(이하 현지시간)에 표결이 있을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진데 이어 표결을 통과했다는 속보가 나왔다. 162명이 참가한 표결은 만장일치로 15분만에 끝났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전했다.
오후에야 표결 결과가 공개될 것이라는 당초 예상보다 한참 이른 시간이었다. 물론, 공식 발표는 오후 6시에야 관영 신화통신을 통해 나왔다.
더욱이 최고 형량 등 베일에 가려진 법안 세부 내용이 공개된 것은 표결부터 14시간이나 지난 밤 11시였다.
중국은 초안 마련에서 심의·표결에 이르기까지 법안의 구체적 내용을 비밀에 부쳐오다가 홍콩 주권 반환 23주년 기념일이자 중국공산당 창립 99주년 기념일인 7월 1일을 1시간 앞두고 법 시행과 동시에 전문을 공개했다.
홍콩인 750만명 가운데 몇사람을 빼놓고는 자신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홍콩보안법이 어떤 법인지 시행 직전까지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홍콩보안법 발효를 몇시간 앞두고 이를 환영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홍콩보안법 시행으로 지난 1년 동안 홍콩을 괴롭힌 사회적 혼란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보안법은 발효 전부터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했다.
홍콩의 대표적 민주화 운동가 조슈아 웡은 법안 통과 소식이 전해진 뒤 자신이 비서장인 데모시스토당(香港衆志)에서 탈당한다고 발표했다. 조슈아 웡과 함께 우산 혁명의 주역인 아그네스 차우와 네이선 로도 데모시스토당에서 탈당했다.
이들의 탈당에 이어 오후에는 데모시스토당이 해체를 선언했다. 지난해 송환법 반대 시위 때 국제사회 연대를 호소했던 데모시스토당은 홍콩보안법의 타깃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었다.
홍콩 독립을 주장해 온 '홍콩민족전선'과 송환법 반대 시위 때 학생들의 시위를 이끈 '학생동원'도 잇따라 홍콩 본부를 해체한다는 소식을 알렸다.
중국은 홍콩보안법 통과 당일 홍콩의 반중 세력과 미국 등 외국을 향해 으름장을 놨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오후 브리핑에서 미국의 홍콩 특별지위 박탈에 대해 "중국은 필요한 반격 조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민해방군 홍콩 주둔 부대는 육·해·공군 3군 합동으로 군사훈련을 벌였으며 이는 관영 CCTV 전파를 탔다. 인민해방군은 하루 전에도 홍콩 주둔 부대 저격수들이 실탄 훈련을 하는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공개했었다.
소수의 시위대가 홍콩 센트럴 지역의 쇼핑몰에서 '죽는 것이 두렵지 않다'는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홍콩보안법 통과에 항의했지만 이미 잔뜩 움츠러든 홍콩은 대체로 조용한 편이었다.
y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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