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 다양한 목소리 요구하는 '뉴노멀'…여당 일방통행에 젊은 층 등 돌려
(방콕=연합뉴스) 김남권 특파원 = 10일 치러진 싱가포르 조기 총선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은 변화였다.
집권 여당인 인민행동당(PAP)이 전체 93석 중 83석으로 3분의 2 이상을 차지했지만, 야당인 노동자당(WP)에 사상 최대인 10석을 내줬다.
기존에는 2011년·2015년 총선 당시 6석이 가장 많았다.
여당의 의석 점유율은 89.2%로 사상 처음으로 90% 아래로 떨어졌다.
득표율도 직전 총선인 2015년 당시 69.86%에서 8.62% 포인트나 하락한 61.24%를 기록했다.
역대 최저인 2011년의 60.1%에 가까운 수치다.
사실 이번 선거도 PAP의 승리 자체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국부로 추앙받는 리콴유 총리가 창설한 정당인 데다 1965년 독립 이후 작은 섬 국가를 세계 최고의 강소국 중 하나로 이끈 PAP인 만큼, 승리는 당연시됐다.
다만 내용이 중요했다.
그렇기에 기존 참패 기록을 상당 부분 갈아치운 이번 선거는 여당 PAP에 대한 '민심의 경고'이자 '사실상의 패배'로 해석된다.
무엇보다 미증유의 코로나 사태와 그로 인한 사상 최악의 경제 침체 그리고 일자리 감소 등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여당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유권자들이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총선에서 PAP를 이끈 리셴룽 총리도 일정 부분 이를 인정했다.
리 총리는 개표 결과가 발표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번 결과는 제가 희망했던 강력한 권한 이임은 아니다"라며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번 결과는 소득 상실과 일자리에 대한 우려 등 싱가포르 국민이 이 위기에서 느끼는 고통과 불확실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리 총리는 선거 내내 코로나 사태로 불거진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집권 PAP에 강력한 힘을 달라고 호소했지만, 이에 힘을 실어준 유권자들은 이전보다 확연히 줄었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의 엘빈 옹 박사는 일간 스트레이츠 타임스에 "많은 이들이 집권 여당이 코로나 위기를 다루는 방식에 만족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평가했다.
컨설팅업체 '브라이언스앤 파트너스'의 레너드 림은 로이터 통신에 "이번 선거 결과는 싱가포르 정치계에 '뉴노멀'(새로운 일상)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적 걱정이 마음을 짓누를 때 정부가 해온 데 대한 불만을 알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훨씬 더 수준이 높은 유권자들이었다"고 평가했다.
국립싱가포르대 정치학부 빌비어 싱 교수도 신문에 "기억돼야 할 밤이다. 거의 2011년 총선의 재판"이라면서 "집권당에 반대하는 전면적인 변화가 있다"고 말했다.
일자리와 경제적 안정 등 먹고 사는 문제 외에도 이번 총선에서는 젊은 유권자들이 새로운 정치를 바라며 변화의 바람을 주도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노동자당은 처음 생긴 셍캉 집단선거구(GRC)에서 20~30대 새로운 얼굴들을 내세워 각료 등 무게감 있는 인사들로 구성된 PAP에 승리하며 역대 처음으로 두 개의 GRC를 가져왔는데, 젊은 층의 지지가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이 선거구는 주민의 60% 이상이 45세 미만이다.
리 총리도 기자회견에서 "이번 결과는 의회 내 목소리의 다양성에 대한 명확한 바람을 보여준다"면서 "국민들, 특히 젊은 유권자들은 의회 내에서 더 많은 야당을 보길 원한다"고 말했다.
정치분석가인 유진 탄 싱가포르 경영대(SMU) 교수도 CNA 방송에서 "젊은 유권자들은 정치권이 더 중요하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듣기를 원했다"면서 "(PAP) 일당 지배 체제는 그들에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SIM 글로벌 에듀케이션 대학의 펠릭스 탄 박사는 스트레이츠 타임스에 '견제와 균형과 의회 내 더 다양한 의견 등과 같은 야당의 메시지가 젊은 유권자들에게 반향이 컸다고 말했다.
특히 탄 박사는 더 많은 교육을 받고 정치적 안목도 상대적으로 높은 젊은 유권자들은 생계 문제를 넘어서 투표에 나선 것으로 봤다.
2016년 물품용역소비세(GST)를 올리고 이듬해에는 헌법을 고쳐 말레이계에 대통령이 될 권한을 부여하는 등 PAP의 일방통행식 정책 결정에 젊은 유권자들이 분개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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